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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클리인사이트 Weekly insight

부산의 영적 도해 The Spiritual Map of Busan, KOREA

by 바이블도슨트 Bible Docent 2026. 1. 24.

부산 개요

 

 고려사, 세종지리사, 해동제국기 등 옛기록을 보면 고려 공민왕 때로 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부산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져 왔다. 하나님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세워질 때 이 도시에 부를 주시고 이 부요함으로 다른 도시의 이 나라를, 그리고 열방을 축복하라고 계획하신 것이다그러나 고려시대때부터 일본인은 식량을 획득할 목적으로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부산을 비롯한 인근 지역들을 잦은 약탈의 대상으로 삼았다.1443년 계해조약에 의해 부산포, 제포, 염포 등 3포가 개항되어 왜관이 설치되면서 부산의 부요함은 사라져 가고 일본의 완충지대로 전락했다. 부산포의 '부자 부' ()자가 가마솥을 의미하는 '가마() '()의 부산포(釜山浦)로 바뀐 것은 조선 중기, 15세기 후반인 것으로 전해 지고 있다. 급기야 임진왜란의 7년 전기간에 걸쳐 일본군의 점령에 아래 있어 전국의 어느 지방보다도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고 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가 되었다. 하나님이 허락한 도시의 은사인 부()는 정치적인 사건들로 인해 없어지고 골칫거리의 도시로 전락했다. 약탈의 대상과 일본으로 쌀을 보내야 하는 미운 항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곱지 않은 일본들이 출입하는 도시로서 가마솥을 뒤집은 듯한 산을 상징하는 부산(釜山)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탄은 부산이라는 도시의 은사를 은폐시키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참소하여 급기야 이름까지 바뀌게 하였다.

 

 부산은 유라시아 (유럽과 아시아)대륙의 동쪽 끝 바닷가,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우리 나라 제일의 국제항만도시이며, 육상, 해상, 항공 교통의 중심지로서 해양과 대륙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이어 경상남 . 북도를 포함하는 우리 나라 동남 부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이다.

 

위치

동쪽 끝은 해운대구 송정동으로서 - 동경 12912?38?

서쪽 끝은 강서구 천가동 미백도로서 - 동경 12845?54?

남쪽 끝은 사하구 다대동 남형 제도로서 - 북위 3453?10?

북쪽 끝은 금정구 두구동으로서 - 북위 3518?36?

면적 961231일 현재 749.37이며 주거 면적으로는 102.61로 전체 면적의 13.7%를 차지한다.

 

기후

대륙동안의 온대 계절풍 기후대에 속하면서도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가 적으며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산지와 하천으로는 우리 나라의 등뼈인 태백산맥의 끝부분으로서 금정산, 백양산, 쌍계봉, 장산을 비롯해 여러 개의 산이 있다.

또한 하천으로는 총길 이가 513.5km이며 압록강, 두만강에 이은 세 번째로 긴 강인 낙동강을 비롯해서 길이가 대체로 짧고 거의 직선으로 경사가 급한 해안유역의 하천들이 있다

 

인구

251월 23일 현재 부산의 인구는 3백 24만1천6명으로 24년 대비 약 2.5만명 줄어 들며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5%를 넘는 초고령 사회이며, 대부분의 구,군에서 인구가 줄고 있으나, 강서구는 늘고 있다.

 

부산의 연혁.

- 2천년전 장산국 ( 또는 거칠산국) 이라 칭함.

- 757년 신라 경덕와 16년 동래 군으로 됨.

- 1021년 고려 현종 9년 동래 군으로 됨.

- 1387년 동래 읍성 축성.

- 1397년 조선 태조 6년 동래 진으로 됨.

- 1547년 조선 명종 2년 동래부 (도호부)로 됨.

- 15924월 임진왜란시 동래성 함락.

- 15925월 동래 현으로 격하됨.

- 1599년 동래 도호부로 승격.

- 1636년 동래부 동헌 건립.

- 1655년 동래 부에 독진(獨鎭) 설치.

- 1731년 동래읍성 증수 (현재의 위치)

- 1742년 망미루 건립 및 송공단 설치.

- 1761년 온정 개건 비 건립.

- 1764년 동래부사 조엄이 처음으로 고구마 종자를 가져옴.

- 189510월일신여학교 창립. (현 동래여고)

- 18968월 동래 감리서 설치.

- 18981월 동래부 한문소학교 설립. (일명 동래부학교라 불렸음)

- 19063월 동래삼락학교 설립.(현 동래고등학교의 전신)

- 19074월 동래제일공립보통학교 개설.(현 내성초등학교의 전신)

- 190712월 삼락학교가 동명학교로 개칭.

- 19088년 동래 상업회의소 설립.

- 19105월 부산진 - 동래간 경편철도 개통(191510월 전차 운행)

- 191010월 부산 부를 설치하고 그 관할을 과거 동래부 전 구역으로 정함.

- 191510월 동래경찰서 창설.

- 191610월 동명학교가 사립 동래고보로 개칭 (현 동래 고등학교)

- 19193월 동래고보 일신여고 3.1운동 시위에 참가.

- 19236월 이조시대부터 있었던 동래온천 공중목욕탕을 신축.

- 19256월 부산진 일신여학교 고등과를 동래면 복천동으로 이전.

- 19261월 동래 일신여학교 개교 (현 동래여자고등학교)

- 193012월 동래 읍에서 흑조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을 하던 김규식이 체포되어 옥사.

- 193328개 방면 설치(방면위원제 실시)

- 19364월 동래 군으로 속했던 서면과 안남리를 부산 부에 편입(부산진 출장소 설치)

- 19402월 조선총독 한인에게 창시제도 시행.

- 194210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래출장소 설치.

- 194610월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개칭(4개출장소. 119개동)

- 19498월 부제가 폐지되고 시제로 되어 부산 부는 부산시로 개칭.

- 19556월 부산교육대학교 개교.

- 19571월 부산시 구제실시로 동래구 승격.(해운대, 수영출장소 포함)

- 195911월 동래 경찰서 11개사찰을 강탈한 4인조강도 일당 체포.

- 19631월 직할시 승격으로 구역 조정.(북면 송정리 흡수)

- 19643월 부산 여자대학교 개교.

- 19648월 동래고등학교 본관 건물 화재 발생.

- 196512월 동래 - 구포간 가도 개통 (온천동 - 만덕고개)

- 19661월 연산 2동을 2,3동으로 분동(35개동)

- 19663월 동래야류가면극 무형문화재로 지정.

- 19674월 금강공원 동물원 개원.

- 1968558년만에 시내전차 철거.

- 196810월 동래구청사 신축준공.

- 196811월 시립도서관 동래분관 개관.

- 196812월 부산 시립병원 개원.

- 196812월 동래시장 대형화재 발생.

- 19691월 동래구 간선도로에 수은등 설치.

- 19693월 부산 민속 보존협회 창립.

- 196912월 경부고속도로 대구 - 부산간 개통.

- 19704월 동래 폐총 국가사적 문화재 지정.

- 19705월 사직지구 구획정리사업 기공.

- 19706월 경부고속도로 개통 (428km)

- 19707월 거제동을 1,2,3동 연산 2동을 2,4동으로 분동, 장전 동을 1,2,3동으로 분동.

- 19713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지정 (대금 산조)

- 19726월 시지정 유. 무형문화재 및 기념물 지정 (유형6, 무형2. 기념물7)

- 19735월 금강공원 유료화로 금강공원 사무실 발족.

- 19736월 시지정 유형문화재 지정(군관청)

- 197311월 남해고속도로 만덕터널 개통.

- 19747월 부산민속예술관 준공.

- 197510월 북면 출장소 폐지. 수영 출장소 관활은 남구에 편입 (남구청 신설) 연산 2동을 2,5

동으로 분리.

- 19764월 동래구 해운대 출장소 폐지. (, 직할 해운대 출장소 설치.)

- 197711월 시지정 무형 문화재로 지정(동래 지신밟기)

- 19781월 반여 1,2, 반송 1,2동 재송동, 석대동이 해운대 출장소로 이관.

- 19782월 부산진구 금성동이 동래 구에 편입.

- 19787월 충렬사 정화사업 준공.

- 19791월 온천2동을 2,3동 사직 동을 1,2동 부곡 동을 1,2동을 분동.

- 19792월 시지정 무형문화재 지정(충렬사 제향)

- 19798월 명륜동을 1,2동 사직1동으로 1,3동 거제3동을 3,4동 연산3동을 3,6동 연산4동을 4,7

동으로 분동.

- 19803월 부산경상전문대학교 개교.

- 19806월 시지정기념물 지정.(이섭교비)

- 198012월 복천동 고분 군에서 마면 위 유물출토.

- 19815월 금강공원 관리사업소가구관할사업소로 됨.

- 19816월 국가사적 문화재지정 (복천동고분군)

- 19829월 연산1동을 1,8동 안락동을 1,2동으로 분동.

- 19831월 마아산 체육공원 준공.

- 19839월 고속버스터미널 개장.

- 198411월 정부기록보존소 부산지소 개소.

- 19852월 시지정무형문화재 지정(풍어제)

- 19857월 지하철 1호선 개통(노포동 - 범내골 16.2km)

- 198510월 사직실내체육관, 야구관 개장.

- 198512월 연산8동을 8,9동으로 분동.

- 19865월 망미주공아파트단지 준공.

- 19867월 제2만덕터널 기공.

- 19871월 연산3동 일부와 연산9동 일부가 남구 망미동에 편입, 남구 망미1동 일부는 연산 3,9

동에 남구 망미2동 일부는 연산9동에 편입.

- 19873월 연산도서관 개관.

- 19873월 금강공원 관리사업소가 시직할사업소로 됨.

- 19876월 동부시외버스터미널 개장.

- 19881월 금정구시니설 20개동 (1 - 금정동)이관.

- 19884월 제2만덕터널 개통.

- 19885월 자치구제 실시.

- 19885월 수영하수처리장 준공.

- 19894월 사직종합운동장 실내수영장 개장.

- 19897월 시지정무형문화재 지정(가야금 산조)

- 19899월 안락교 준공.

- 198910월 부산지방국세청 이전 개청.

- 19901월 명장 동을 1,2동으로 분동.

- 19903월 동래 지하철역 역세권주차장 개장.

- 19903월 동래구 종합복지관 개관.

- 19908월 온천장 지하철역 역세권 주차장 개장.

- 19911월 안락로타리 지하차도 개통.

- 19913월 내성로타리 지하차도 개통.

- 19914월 구의회 개원.

- 19915월 제1회 동래구민의 날 행사 개최.

- 199112월 연산경찰서 개서.

- 19926월 연산교 준공.

- 19927월 수영강 정비공사 기공

- 199312월 시지정문화재 지정.무형(동래고무)

- 19941월 부산 시청 연산동 신청사 기공.

- 19943월 명장 도서관

- 19948월 국제 신문사 신 사옥 신축 .

- 19951월 부산 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개편.

- 1995년 3월 양산군 기장, 장안, 정관, 일광, 철마면과 진해 시 웅동 일부 편입

- 1996년 9월 13일 부산국제영화제 개최

- 1997년 11월 도시철도 3호선 착공

- 1999년 6월 도시철도 2호선 개통(서면~호포)

- 2002년 9월 제 14회 아시안게임 개최

- 2003년 12월 도시철도 4호선 착공(미남~ 기장)

- 2005년 11월 APEC정상회담 개최(벡스코)

- 2005년 11월 도시철도 3호선 개통

 

 

1. 역사적인 조사(Historical RESEARCH)

1.도시의 건설

A-1이 도시를 건설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고대의 자연발생적 집단이며 부족형성이 되어왔고, 삼한시대에서 신라에 편입되면서 부족에서 동래현으로 바뀌게 된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시대.6.25를 거치고,공업화가 시작되면서 피난민들과 유랑인들,귀환동포 부산의 지형적인 조건과 천연자원의 풍성한것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여들게 되었다.

부산이 도시의 성격을 갖춘 시기는 일제시대인 1914

사람들이 살게 된 유래추적

[고대사]

도이사냥돌 격지 등의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고 있는것으로 보아 적어도 구석기시대 후기단계에는 확실히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신석기시대 유적(7.000년 전에) -강가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선사시대 문화유적지 참조)

조개무지(동삼동,아치섬,영선동,다대동,암남동,금곡동 율리,녹산동 범방등)

유물-빗살무늬토기와,동삼동 조개무지는 이 토기시대구분에 있어서 중요한 유적일 뿐 아니라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방의신석기 문화와일본 북구주지방의 신석기 문화가 서로 밀접하게 교류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국제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적이다. 영도 동삼동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게되었고,점차 해안선을 따라 낙동강 하류 쪽으로 퍼져 나갔을 가능성이 많다.

청동기시대 :농경문화 정착중심생활(만주에서 들어옴)

유적지 - 구서동,금강공원,장전동,금사동,거제동,사직동,양정동,수영동,부곡동,낙민동,대신동,괴정동,감천동등 부산의 모든 지역에서 고루 발견됨. 해안에서 떨어진 내륙 구릉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유물-고인돌,돌널무덤,독무덤, 주거터; 무늬없는 토기,붉은칠한 토기,마제돌칼,마제돌화살촉,돌도끼,홍자귀등

구릉위의 거의 자상화한 반움집에서 살았을 것이며 현재의 시가지가 모두 청동기시대의 취락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남단에 위치에 있는 부산지역의 청도기문화는 일본의 야요이문화의발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삼한시대

57-79 신라 탈해이사금대, 거칠산국 정복(거칠산국은 동래지역을 가리킴-동래지역이 신라에 복속되었다는 기록을 통해 신라의 영향권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신라로 보아서 동래지역은 관문구실상 필요했다.뒷받침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당시 가야권내의 문화현상의 특징-지배자의 분묘로 추정되는 목곽묘가 출현한다는 사실.일반분묘와 구별되는 묘역,부곽의 발생,순장(보다 큰 권력자 출현을 말해주고 있다. )

통일신라시대의 부산

동래군으로 신라에 편입된다. 삼국사기-지리지"동래는 본래 거칠산군으로 경덕왕이 동래군으로 고쳐 지금도 이에 따른다...생략경덕왕16년에東來라는 이름비롯.

중앙정부와 동래지역이 원만한 관계형성이 되지 못함-천민집단인 향.부곡이 향이1,부곡이 4군데 전하고있는데 호구수등을 감안할 때 많은편이었다.

고려사

견훤이 고려 태조에 사신을 보내어 절영도(영도)의 명마 한 필을 보냈다가 되돌려 받은 사실이다. 부산 지방은 목장이 특히 유명했던 곳인데 절영도라는 이름도 명마가 빨리 달려 그림자조차도 볼 수 없다.는 말에서 얻어진 이름으로 이것이 줄어져 지금의 영도가 된 것이다. 명마를 고려 태조에게 보냈다는 것은 후백제의 영역판도가 한반도의 최남단인 부산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사례. 이것으로 고려가 동래군은 동래현으로 격하시키게 되는 계기가 됨

부산지역에는 변방지역임을 증거-금정산성,증산성

온천사업유명-국왕,귀족들이 이곳을 찾았다.(사치,향락),태종대

 

A-2 이 도시를 건설한 개인적인 이유 혹은 집단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의 철학과 신조는 어떤 것이었는가?

이 도시의 장래의 비젼은 무엇이었는가?

신라의 포섭-왜와의 통교요충지,국가의 관문으로 정치,군사상의 요충지로서 중요시

(동래기영회 50년사-동래의 역사와 민풍)

 

A-3 이 도시의 원래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이름이 바뀌었나?

-이 도시에 대한 다른 이름이나 토속적인 호칭이 있는가?

-그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족시대에는 거칠산국,내산국,부산부곡으로 불렸고 신라에 속하면서 거칠산군이 되었다가 통일신라의 경덕왕때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로 개명 지금의 이름인 東來로 개칭.

釜山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그 정확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고려사,세종실록지리지, 해동제국기 등 옛 기록을 보면 고려 공민왕 때부터 조선초기까지는 富山浦로 불리워왔다.

부산포(富山浦)'부자'자가 솥을 의미하는가마 의 부산포로 바뀐 것은 조선중기,15세기 후반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486년 간행된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부산은 동편현에 있으며 산(증산-황령산)이 가마꼴(釜形)과 같으므로 그 곳이 곧 부산포(釜山浦)이다.

조선시대에 동래의 부산포라 하였으며 1407년에 내이포(웅천)와 함께 대일무역을 위한 항구로서 개항

-그것은 어떤 종교와 연관되어 있는가? 아니다.

-혹 마귀적이거나 주술적인 이름은 아닌가? 아니다.

- 이름이 축복이나 저주를 의미하는가? 아니다.

 

2.도시의 종교 역사

A.비기독교적인 종교

A-1.이 도시가 건설되기 전에 이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종교적인 관습과 견해들은 어떤 것이었나?

-무속신앙(샤아머니즘),우상숭배,토테미즘

 

A-2.이 도시의 건설에 있어서 종교적 사항을 중요하게 고려했는가?

- 아니다.

 

A-3.비기독교인들이 대단위로 이 도시에 이주한 적이 있는가?

일제시대 일본인들

귀환동포

6.25전쟁시 피난민들

공업화에 따라 생계유지를 위해 유입된 인구

 

한국동란이 발발한 1950년에서 휴전이 성립된 1953년간에도 부산의 인구는 급속한 증가

1949-1953년간에 75.8%(연평균19.0%)가 증가하여 1945-1988년간의 각 시기 중에서 죄고의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동란중 부산이 피난도시 뿐만 아니라 임시수도로서 피난민은 물론 인구의 유입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울 피난민, 묵호지역의 피난민 유입. 1950.7.17에는 수도가 부산으로 천도함에 따라 부산은 임시수도로서 정치,경제,사회적인 중심지 뿐만 아니라 병참기지로서의 중요한 역할

당시 부산의 인구 수용능력이 30만정도였기 때문에 학교,극장,교회,사찰,큰 건물들이 피난민 수용시설로 이용. 빈터,도로변,냇가,언덕할 것 없이 움막,판잣집

 

공업화 현상

1972년 부산이 인구가 급증(2,015,162명 전국에 대한 6.0%, 시역확장에 따른 증가)-1962년부터 시행된 경제개발과 이에 따른 산업발달로 인해 대도시에인구가 집중했기 때문, 1963년 직할시 승격과 시역확장의 영향 또한 컸다. 1,2차 경제개발은 투자효과가 큰 재도시를 중심으로 수행되었고,수출지향적 산업에 치중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제2의 대도시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제1의 항구도시인 부산은 산업의 발달 뿐만 아니라 부산항의 수출입물량의 증가로 그 경제가 크게 활기를 띄었다. 부산에 근접한 울산공업단지,포항종합제철소,마산수출자유지역의 건설 등으로 부산의 중추관리기능이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어비스업이 발달하여 인근 배후지로 부터 인구의 유입이 계속. 1988년말 현재 3768천명으로 전국인구 41975천명의 8.98%를 차지

수출 지향적 공업화 과정에서 농촌, 농업의 파탄과 이로 인한 인근 경 남북 전남 북 일데에서의 이농민층의 대량 유입은 부산의 인구규모를 급격히 팽창. 부산은 광범한 인구를 수용할 만한 충분한 소득원이 마련되지 못한 채 도시인구 규모가 이상비대화됨으로써 상당 정도듸 실업,반실업이 밀집 부산의 실업율은 언제나 전국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인구의 과잉화는 부산지역 산업의 존립을 가능케 하는 주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부산 지역의 산업은 자본,기술적 요인보다는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임금업종이 주종을 이루면서 존립가능. 도시의 기능이 점차 서비스화되어 가면서 많은 노동력이 서비스산업쪽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제조업의 저임금 업종은 기존의 저임금, 조동조건으로는 존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A-4.프리메이슨과 같은 비밀 사교집단이 이 도시에 있는가?

-프리메이슨:자료로 밝혀진바는 없지만 인터뷰를 통해 간접적으로 두 곳이(본부)있다고는 한다.

문정수 시장이 JMS(Jesus Morning Star)의 회원이며 그 행사마다 참여한다는 보도가 있다고 한다. (고신대 이상규 교수님, 장소영)

 

A-5.이 도시에서 무당들,사단주의자 집단 또는 그런유의 다른 이단들이 활동한 적이 있는가?

바다를 둘러싸고 있는 부산이기때문에 재액과 외침이 심했다. 그래서 부산의 곳곳에는 제단과 사당이 많았다. 그 제단과 사당은 부락제가 되어 마을사람이 공동체의식을 낳게 하는 한편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갔다.

동래부의 사직단 : 사직단은 원래 임금이 백성을 위해 토신과 곡신을 제사하는 제단(지금의 동래구 사직동은 한일합방 이전까지는 석사리와 서고리의 두 자연부락에 2백여 세대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었다. 그 석사리가 서고리에 병합되었다기 1916년 서고리가 사직동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감만동의 무민사 - 최영장군을 모신 사당이 곳곳에 있다. 일제후기 무민사 사당이 헐려서는 동항국민학교로 옮겨져 인본의 봉안정이 되었다. 봉안전-일본의 조상을 모신 작은 신전으로 일제 후기에는 학교마다 세워졌다.

사하구의 당리동 재석곡-불교에서 말하는 범왕과 더불어 불법을 지키는 신인 재석천을 말함, 무당이 만드는 가신제의 대상

청사포의 풍어제 - 4년마다 열리는 풍어제는 음력 10월에 행해지는데 닷새 동안 계속되어짐 용왕을 모시고, 40명의 무당이 참가:주술로서의 사설을 읊음(자취감춤)

사이비 종교

통일교

대순진리교

원불교

 

 

B.기독교

B-1.기독교가 언제 이 도시로 들어오게 되었는가?

또 어떤 상황에 들어왔는가?

-부산에 개신교가 전도될때 부산사회는 서울의 정치도시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이에 대해 미국장로교 선교사 알렌(ALLEN)도 처음 상해에서 인천으로 가는 도중 부산에 들렸다가 부산을 보고 왜색이 짙고 저속한 사람이 많아서 선교후보지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근대 문명의 물결이 일찍이 닿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에 개신교가 일찍이 전래되었던 것이다. (부산총감.1988)

*경상남도 지방에서의 선교를 위한 최초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면 중국과 일본에 주재한 외국 선교부의 노력으써 1880년대초부터 간헐적으로 시도된바 있다.

1.1883년 복음을 전하려는 최조의 스코틀랜드 성서공회(NBSS,The National Bible Society of Scotland)의 성경반포사업.예수셩교 누가복음 젼셔,예수셩교 요안나 보음젼셔를 번역한것의 일부를 일본 요꼬하마주재 성서공회 총무인 톰슨이 일본인 2명에게 월급을 주어 조선에 반포시킴-(2000권정도)

2.1884.9.20 개신교 선교사 정식입국

영국 교회 선교회 소속 월푸가 부산에 와서 조선 선교의 필요성을 남지나 선교회에 호소함 이로 인해 영국교회 선교부 즉, 외지 복음선교회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부산을 비롯한 경남지방에서의 호주 장로교 선교의 길을 안내하게(호주 선교회에 편지를보냄)된 중요한 선두자역할을 하였다.

3.1887.7.월 최초 부산의 개신교 선교사는 카나다 선교사인 게일(James Scarta Gale):1년 반동안 선교활동보다는 한국의 역사와 언어공부에 집중했었다.

4.1890.9.30하디의사(Dr,Robert A. Hardie,1865-1949)-2년간 의료선교활동. 재정지원(토론토YMCA)의 어려움으로 효과적으로 감당하지 못함

5.1889.10 한국에 온 첫호주선교사 데이비스와 메리 데이비스남매(개인이 자원함)-서울에서부터 부산까지 도보여행으로 인해 천연두에 감염되었고 부산에 도착한지 5일만에 사망. 부산 영선동에 매장.이로 인해 호주 장로교회의 한국선교,부산,경남지역 선교를 가능케 했던 동기부여함.

6.1890.7,23-집행위원회(호주장로회 청년 연합회):한국에 선교사를 다시 파송, 지원하기로 결의하였고 여선교회연합회도 동일한 결의가 있었다. 데이비스의 죽음에 대한 값진 희생

 

미국북장로교 선교활동

7.1891.2.3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윌리엄베어드부부 부산지부 선교사로 임명 - 선교부지를 매입하는 일 영선현의 땅을 매입(일본인 거주지밖)-북장로교한국인 의 부산, 경남지역 선교 거점이 되었고 초량교회의 모태.순회전도사역(8차례) 이 때 함께 일했던 - 서상륜,서경조,고윤하

8.1893. 영선현(영선고개,영주동,초량일부지역)미국북장로교 선교부 중심지.

부산진(범일동,좌천동)-호주장로료 선교부 중심지 * 이 두곳이 부산지방의 상거래요충지

9.1891.12월 휴 브라운의사(북장로교의 첫 의료선교사)-결핵의 감염으로 본국으로 돌아가 병사함

10.1893.11. 어빈의사

18955. 아담스부처 파견-아담스 목사는 대구지방 선교의 실질적인 개척자요 대구지방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1914년 북장로교 철수 23년간(1891-1914)21명의 선교사가 부산에서 사역함

 

호주선교회 데이비스 선교사의 희생이후

멕카이목사부부,장로교 여선교회 연합회 파송을 받은 3인의 미혼 여선교사등 5사람이 파송됨

1892.8.3멕카이 목사 부인은 폐렴으로 사망함.

부산진지역(동구좌천동686번지 일대는 호주 선교부의 부산,경남지역 선교거점)

1894.5.20아담슨 목사와 멘지스야으 무어양과 함께 호주 선교부를 이끌어간다.

선교활동-전도,교육,자선사업활동 : 부산진의 한국인 거주지에서 선교사들이 함께 살면서 어린아이들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으로 열매가 있어지기 시작한다. (1891년 까지는 단 한사람의 여신자도 없었던 상황이었다.)호주의 여선교사의 활동으로 인해 학교교육과 부인 성경반 그리고 고아원의 시작을알리는 첫 신호가 되었다.

*1902년 진주, 1911년 마산,1913년 통영(현재 충무)과 거창에 선교지부를 설치하며 선교운동 확대

*부산진지부 1892.

1894.4.22 첫 세례식-심상현(멘지스양의 어학선생),이도염(페리양의 조수,고아원의보모역할),귀주 :교회의 첫 회원백낙준박사 한국교회 초기사

심상현의 동생 심취명은 부산,경남지역의 최조의 장로,목사(1904,1909)

교회의 설립 (한국최초의개신교회 - 1884년 황해도 장연군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

부산진교회가 먼저인가 초량교회가 먼저인가에 대해서는 주장하는바의 차이가 있다.

 

1892.11.7 초량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사기-“부산진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여선교원 맨지스양이 당지에 내왕하야 각양의 시험과 박해를 모하고 전도한 결과 신자가 계기하얏고 선교사 왕길지가 내왕하야 교회를 설립하느니라

1901년으로 기술하였지만 근년에 발견한 표상장등에 근거하여 교회 설립연도는 1891년이라고 주장 검토와 검증이 필요하다.

 

B-2 과거에 기독교 지도자들이 프리메이슨이 있었던 적이 있는가?

(통일교가 포교 되었을때 이요한이라는 기성교회 목사가 통일교로 입교하여 경상남북도의 지도자로 영향을 끼친적이 있다.)

 

B-3 기독교 공동체가 이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 또 이것으로 변화는 있었는가?

-교육활동,자선봉사활동

시대적 배경: 1890년대까지 부산,경남지역은 구식교육(서당,서원,향교-한문이나 유교경전)

1890년대부터 기독교 선교운동과 함께 시작.

1891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배위량(W.M.Baird)에 의해 최초의 남자학교설립

(학교에 관한 자료가 거의 전무함참고.R.H.Barid op.cit.,p131)

1892. 미오라 고아원(최초의 고아원)-멜브론의 투락에 있던 하퍼부인의 큰 저택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 한국선교에 큰 영향을 끼쳤고 재정으로 후원했던것을 기념

1895.10.15부산진 일신 여학교로, 동래 일신여학교로 발전(여성교육기관)

1897. 야학교를 부산서 개교(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고아나 극빈여아들 대상)

1906. 진주,마산에 남.여학교를 개교

*이 지방에서의 근대식 교육은 한국의 타처와 마찬가지로 기독교계에 의해 주도되었고 선교부가 설립한 학교가 관공립 학교 보다 훨씬 많았고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은 기독교계 학교가 거의주도

의료사업 - 병원 및 시료소 2개소, 입원환자 누계 외래환자가 4,005명으로 되어 있다. 특히 그 가운데 부산나병원(처음은 지금 용호동에 있는 국립상애원의 전신)은 유명한 것이다. 어을빈 의사가 19103.30일 수명의 환자를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0월에 영국 나환자 구호외의 경영으로 옮겨서 호주 선교사 멧켄지가 관리자가 되어 이들 나환자의 미감염 아동들을 격리하기 위하여 1932515일에 범일동에 격리(시온유아원)을 설치- 현존 고아원 가운데 가장 오래됨

 

B-4 이 도시에 있는 기독교는 발전하고 있는가? NO

정체상태인가? yes

감소상태인가? yes

 

C. 관계들

C-1.종교들간에 알력이 있었는가? 아니오

C-2 교회에 분열이 있었는가?

일제말기 신사참배를 둘러싼 문제 - 고신과 장로교의 분열

 

 

 

 

B.도시의 후기역사

B-1이 도시는 나라전체의 생활 그리고 특성과 관련하여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가?

-부산은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대륙의 동쪽끝 바닷가, 한반도의 동남쪽 끝에 자리한 우리나라 제일의 국제항만도시이며, 2의 도시,육상,해상,항공 교통의 중심지로서 해양과 대륙을 잇는 관문역할을 한다.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이어 경상남 북도를 포함하는 우리나라 동남부의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동쪽은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마주하면서 한반도의 문호적 역할을 감당한다. 환태평양과 북동아시아협력시대의 중추지 역할. 유라시아대륙(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으로 또 아메리카 대륙과의 바닷길 요충항으로 그 역할은 날로 증대되고 있다.

 

지리적 특성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구 구릉성 산지와 서부 평야지대로 구분되며 동부 구릉성 산지도 수영강을 중심으로 다시 동서로 양분된다.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은 한반도 동남단에 위치한 국내 제1의 국제항이며 동남해안공업 벨트의 중심도시이다.

기온은 대체로 온화하고 강우량은 전국평균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이는 해양성기후로서 정주생활에 최적의 조건을 구비

낙동강 하류 델타지역의 평야부를 제외하고는 전지역이 급경사의 산지,구릉지로 구성되어 있어 시가지 형성의 제약요인으로 작용

 

B-2이 도시에서 특출한 지도자가 나왔을때 이 도시에 대한 그들의 비젼은?

김영삼 대통령(93.2.25) -신한국 건설(32년만에 문민시대가 개막선언)

대통령취임사 :부정부패척결,경제회생,국가기강 권위회복

변화와 개혁을 강조하였고 고통의 분담을 호소

'위로부터 개혁'을 약속

취임식 참석-부산인들 62명이 초대됨(장애인,소년소녀 가장,미화원,소외된 사람들)

부산에서는 중앙공원 요트장에서 불꽃축제를 중심으로 경축행사가 벌려짐

2.25. 주요 관광지-어린이대공원,태종대공원,금강공원,박물관무료 입장

참고사항

김영삼 대통령 취임이후 한국내에 일어났던 사건중

-시한부종말론 소동(10.28 휴거예정-다미선교 이장림목사 구속)-기독교계 일각의 이단적 시한부 종말론이 물의를 일으킴 광신자들의 신앙형태가 지탄을 받았다.

-부산구포 열차전복 사건

-목포 여객기 추락

-서해 훼리호 침몰

-94년 조계종 붕괴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51219 부산 국제시장 대화재

도개공 아파트

2002년 아시안 게임 유치확정

해상기름 오염 적조

신선대 앞바다 불법매립

김영삼 문민정권이 세워지고 이 도시출신의 지도자이기에 국민들의 기대감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경제적인 회복과 실업률 확보, 무엇보다 도로시설 개설 및 편리에 대한 내용들에 대해 만족이 되지 못하고 제한된 정부의 재정도 있겠으나 야당출신인 감정대립등으로 (?)부산지역에 투자를 하지않는것으로 인해 오히려 선출되지 않는만 못하다며 이 도시인들의 희망없는 대답을 들을수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의 한보사건과 관련하여 문정수 시장(부산시장)의 뇌물수습에 대한 의혹설에 대해 부산시민들이 더더욱 지도자들에 대해 실망하여 기대를 포기하고 있다.

 

B-3이 도시의 정부나 정치적 지도층에 어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적이 있었는가?

지방자치제-지방구의원들의 수준향상 필요

95.6.16 부산 지방의원들 부풀린 학력 들통-도덕성,정직성 문제제기(국졸,중졸후보자가 고졸,대졸로 70여명), 임기기간 동안의 예산비를 다 쓰려드는 심보로 해외연수차 공부라는 이름 아래 해외관광들을 하게 되는 것 발견.

무보수 봉사제로 되어 있는 지방의원제가 무색. 120만원 외유

국제규모행사 운영미숙(1995.7.22 부산)-내용부실,예산미확보

세계축제박람회-국제사기극(환불요구), 95비치 발리볼 월드챔피온쉽 시리즈-졸속기획,주먹구구식 운영으로 실망감

 

부산구의원 61%물갈이-6.27지방선거 결과 부산시 각 구의회 의원 정수의 절반이상이 새로운얼굴로 대폭적인 물갈이 : 구의회 스스로가 위상정립 실패와 기존 의원들에 대한 주민들의 깊은 불신

각종비리,이권개입,관광성외유,호화회식,부산시의회, 16개구군의회 예산이 의원들의 사적경비로 유통되는 등 주민들의 혈세를 낭비-부산시가 기관경고 받음(1995.9.25 국제신문)

교육위원 선출과정에서 뇌물을 받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금품챙김

29일 제2대 구의원 323명중 198명 교체

대표예)기장군 7개 의석중 6석이 신임의원, 영도구 구의장과 부의장 출신이 탈락

 

B-4이 도시의 경제생활에서 의미심장하거나 갑작스런 변화들이 있었는가?

기근이 있었는가?

-임진왜란,6.25동란등으로 인한 가난과 굶주림들이 있었다.

기술혁신이 있었는가?

천연자원이 개발된 적이 있는가?

경제공황이 있었는가?

 

천연자원개발 -지형적인 축복. 경치가 뛰어남(관광명소 유명)

살기좋은 名鄕이 되려면 三抱之鄕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좋은 산,좋은 강,좋은 바다를 싸안아 야 한다

금정산,봉래산,황령산,천마산,낙동강하구,동해와 남해가 어우러지는 자리의 좋은 항구(부산항)

온천-동래, 해운대

신라시대때 자연용출함 . 그때로서는 고관대쟁과 병자들이 오가서 민폐만 생길뿐이다.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위락시설을 갖춘다.

좋은기후 - 온대계절풍의 중간지대에 속하여 인간생활과 문화의 발달에 알맞은 기후조건

바다의 풍부한 자원들 - 부산연해는 한난의 두 해류가 교차하는 곳으로 수산자원이 비교적 풍부하기 때문에 수산업이 농업 다음가는 산업으로 각광을 받음

수산물의 대표적인 것- 대구

어업경영형태-농어겸영의 소규모 경영이 주류를 형성. 약간의 전업적 소규모 경영이 있었다. 어민대여어장,관어장,사어장의 어장이 있었다.(조선시대)

수공업 -관영수공업(공방,관부수요품제조). 민영수공업(역도기소,자기소) 동래지방에 자기,도기,가마니생산 농촌수공업-면포,마포,견직물, 신발,가마니

축산업 - 목마 / 염업발달

기타 - 고구마 종자 입하(1764. 동래부사 조엄)

부산지방에서는 상업을 천시여기는 양반사회속에서도 부산에 설치된 왜관에 있어 대일무역이 번성, 장시가 개설되고 장사로 생계를 유지

대일무역;두모포왜관,초량왜관에서 이루어짐. 사무역(조선상인과 일본인의 사적인 무역활동),공무역

朝市-왜인들에게 일용의 어물과 과일,그리고 채소등을 공급하기 위해 매일열리는 시장

 

경제

-70년대 중반 이후 전반적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부산경제의 전국비중은 점차 둔화되었으며 지역총생산의 경우 1975년도에 전국비중은 9.5%를 점하였으나,1993년도에 7.0%감소됨

-산업별 인구구성은 1985년에는 1차산업이 4.0%,2차산업이 38.3%,3차산업이 57.7%에서 1994년에 각각2.2%,28.5%,69.3%로 변화되어 1차산업 종사자가 꾸준히 줄어왔으며 2차산업인구도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총773개의 업체가 역외로 이전하였으며 종업원수로 볼 때 59,397명이 역외로 이전

부산의 경제적 특성

15세이상의 경제활동인구는 1994년 현재1,698천명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은 59.9%를 차지하며 1988년의 48.7%와 비교하면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임

70년대 중반 이후 전반적 경기침체의영향으로 부산경제의 전국비중은 점차 둔화되었으며 지역 총생산의 경우 1975년도에 전국비중은 9.5%를 점하였으나,1993년도에 7.0%로 감소됨

산업별 인구구성은 1985년에는 1차산업이 4.0%, 2차산업이 38.3%, 3차산업이 57.7%에서 1994년에 각각 2.2%,28.5%,69.3%로 변화되어 1차산업 종사자가 꾸준히 줄어왔으며 2차산업인구도 상당한 수준으로 감소

1977년부터 1994년까지 총 773개의 업체가 역외로 이전하였으며,종업원수로 볼 때 59,397명이 역외로 이전

<부산광역시 경제위상>

 

도시의 특성 배경

낙동강과 그 지류의 서부지역은 토사의 퇴적에 의해 형성된 낮은 충적평야인 삼각주가 발달하여 대저.명지 주변에 비옥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과 수영강 사이의 지형은 해안과 소하천 주변에 발달한 좁고 긴 해안평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침식분지내의 침식평야에 해당됨

선형의 도시구조로 인하여 주요 간선도로에 도시교통이 집중되어 교통혼잡이 가증

백사장,해안경관,온천지(동래,해운대),역사유적지,철새도래지(을숙도)등 관광, 위락 공간이 도시 전역에 산재하여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한 여가생활공간

주거,중심,공업,여가공간을 잇는 교통망은 자연발생적 도시성장, 항만물동량의 도심통과,지형상의 제약 등으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혼잡이 가중

최근에 편입된 기장지역은 대부분이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계획법 적용을 받는 도시지역은 201.82Km로서 기장, 좌천,정관으로 각각 구분

 

인구증가율

'63년 직할시 승격시 부산의 인구는 1,360천인 이었으며 '60년대에는 연평균7-9%의 높은 인구증가율을 보여 '70년의 인구규모는 1,842천인에 달하였고, '80년에 3,160천인, '903,798천인으로 증가하였다.

인구증가율은 70-80년에는 연평균 3.8%의 인구 증가율은 나타냈으나 '81-89년 사이에는 연평균 2.2%의 인구증가를 보여 성장률이 둔화됨

1994년 현재 부산시의 인구는 3,912천명으로 1991년 이후에는 절대인구가 감소하는 추세

인구의 감소경향에도 불구하고 94년도 기준의 일반가구수는 1,118천가구로 '90년대비 11%증가

인구밀도는 1km 7,242인으로 타도시에 비해 매우 조밀하며, 주거지역내 인구밀도를 나타내는 순밀도 측며에서는 서울보다도 훨씬 조밀한 상태

 

*부산의 모습과 현실-부산 빵빠레우리의 부산-어디로 갈것인가. 부산일보사 지은이 김홍구

부산은 지형적으로 바다와 산과 강을 고루 갖추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며 특히 해안의 천혜적인 항만과 내륙의 광활한 평야는 미래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을 안겨주고 있는 값진 자원이다. 다만 도시가 계획적으로 개발되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팽창되는 과정에서 각종 도시 문제가 누적되어왔고, 또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고부가가치로의 산업구조 개편과 중추기능 강화에 실패함으로써 지역경제가 크케 위축되었으며 근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의 현실은 매우 어렵고 또 당장은 모든 것이 낙오되어 있고 침체되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중추기능 미약 : 도심 재개발 저조, 금융,정보,유통낙후,국제관련시설 부족, 행정권한의 중앙집중

지역산업 위축 :주종산업 사양화, 노동집약적 경공업 위주, 자본과 기술의 부족, 신규공업용지부족

자금조성 애로 : 지역경제 침체, 자금의역외유출, 지방 재정력 빈약, 중소기업의 자금난

도로교통체증 :도로율 전국 최하위, 항만 물동량 도심통과, 광역 교통 체계미흡, 외곽순환도로 미비

개발규제 철저 : 그린벨트사역의 37%,낙동강 하구 철새보호구역,해발 100m 이상 시역의 30%,

자연환경보전지역

 

부산항은 지금으로부터 118년전인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국제항으로 개항되었고 부산은 1963년에 정부의 직할시로 승격됨.

부산의 경제는 1960년대에는 한국경제의 성장을 주도하였으며, 특히 1972년에는 부산의 수출비중이 전국의 거의 1/3에 이르는 29.2%까지 차지할 정도로 호왕을 누렸다. 그런데 1972년에 전국 수출비중의 29.2%까지 차지하던 부산의 경제는 만20년이 지난 1992년에는 전국 수출비용이 8.7%에 불과할 정도로 침체되었으며 최근 몇년간 그 비율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1995.5)1992년 기준지역내 총생산-전 시·도 평균의 지역경제 성장률이 5.8%인데 비해 부산은 1.3%의 성장에 머물러 전국15개 시·도 중 급기야 최하위를 기록하고 말았으며 이는 부산의 지역경제정체 -1인당 소득수준은 446만원으로 전체평균의 550만원의 평균에도 못미침

 

발전잠재력(21C 도시계획의 미래상)

환태평양 경제권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지정학적 조건과 항만, 철도,공업단지 등 유리한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음

가덕도 신항만건설 등으로 국제항로의 Hub항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교역기능이 강화되어 국제무역 및 유통도시로서의 기능집적이 용이함

범아시아 관통철도의 시발전으로서의 위상정립과 한일해저터널 연계 거점기지 역할 전망

천혜의 자연자원인 해안, 사찰 등을 보전 이용함으로써 자연친화적인 쾌적한 도시 공간을 창출할 수 있으며 국제적 관광 휴양명소로 활용이 가능함

리아스식 해안으로 구성된 간척 매립이 가능한 수심20m이내의 해안매립 가능지를 맣이 보유하 고 있음

생산활동인구(1564세 인구)의 증가와 고졸이상의 고학력 인구비율의 증가추세를 토대로 고도화된 산업생산활동과 자동차,반도체 등 각종 제조업 유치가 가능함

교통난이 가장 심각(도로율저하)

집장만 하기가 가장 힘들다(주택 보급률 최하)

일자기 구하기는 가장 까다롭다(실업률 최고)

사업과 장사는 가장 안됨(부도율 최고)

임금수준은 낮으며(종업원임금최저)

지역경제성장률 최저

’93년 수출액 : 부산-686400만불, 울산-916800만불)한국의 경제성장은 수출위주의 대외지향적인 공업화 전략을 통하여 추진되었으며 초창기에는 목재,섬유,가발,신발등 경공업 제품을 위주로 출발하였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선진국의 표준화된 기술을 도입하여 경공업 제품위주의 수출로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한국경제는 1970년 중반부터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였다.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개편되고 국토의 개발계획이 기간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거점 개발방식으로 진행됨에 따라 저부가가치형 경공업도시인 부산은 경제성장과 수출신장이 모두 둔화될수 밖에 없었고 지역경제력은 약화되기 시작한다. 부산은 제2차 국토개발계획에 따른 대도시 성장억제정책등으로 인하여 산업구조 개편에 실패하고 또 대체 산업을 육성하지도 못하였으며 오직 기존의 목재,신발,섬유등 저부가가치형 산업을 저속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이다. 결과로 1980년대 이후 부산의 지역경제 성장률은 급속히 저하되었고 산업경제 전반에 걸쳐서 성장이 정체. 산업입지의 부족으로 대부분이 지역유망기업들이 타지역으로 이전을 하여갔다.-‘77-93년 기간동안 643개업체, 종업원 55163명이 역외이전

동명목재가 19805월에 폐쇄됨, 국제상사 등 지역을 대표하던 기업들이 수없이 도산하거나 타지역으로 이전함으로 부산의 전국 수출비중은 하강일로를 걷고 있다. - 976월 현재 부산자체 태화백화점 부도

경제성장과 지역발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도로사정과 교통소통이다.

·도별 자동차 보유현황(’94.6)

자동차 보유율보다 도로사정의 곤란함으로 교통체증이 심각하다.

도로율을 1%올리는데 약13천억원이 소요되는데 부산시의 94년도 일반회계 예산1283억원중 가용재원은 47억원에 불과,

부산의 산업은 부가가치가 낮은 노동집약적 경공업 위주로 되어 있어 제조업 1인당 부가가치 생산액이 전국에서 가장 낮다. 임금수준 최저하

 

부산은 도심지역 재개발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시내 곳고에 슬럼지역이 산재하여 있고 대도시로서의 중심기능이 없다.

- 국제시장(현대식 종합시장으로 재개발되어 그야말로 국제적 시장으로서 부산발정의 축이 될 수 있는 여건인데도 불구하고 토지소유자-시장상인-관계당국의 이해관계와 무관심으로 옛날의 모습그대로 명맥유지)

강서지역의 서낙동강권과 가덕도 일원의 개발구상은 21C를 향한 부산의 꿈이며 희망(강을 끼고 있는 부산의경우에는 유독 강의 한 쪽만이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다른 한 쪽인 강서지역은 그린벨트와 철새보호 구역으로 철저하게 묶여있어서 손 하나 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가덕도 일원-신규항만조성

 

오늘의 부산항

세계적인 화해분위기는 부산항으로 하여금 소련의 나홋가항과의 직항로개설에 이은 보스토치니항과의 컨테이너 직항로로 개설.

부산과 중국의 상해사이 일반 정기화물선 직항로도 곧 개설, 두만강 교역투구가 형성되면 러시아.중국.북한.일본.한국과의 동북아 교역도 크게 이루어질것임,

부산항이 치러내고 있는 현재의 실적만 해도 컨테이너 물동량은 국내 95%이상인 250TEU를 감당하면서 세계 6위의 위치에 있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량62%정도가 이곳에서 나가고, 수입품은 전국의20% 정도가 부산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남구 용당동의 신선대 컨테이너부두 27만평이 1991626일 개장을 보아 연간 컨테이너 화물처리 능력은 20피트짜리 96만개가 더 늘어났다. 이러한 여건은 부산항이 가진 지리적 지정학적 조건과 함께 항내의 조수간만의 차(1.3m)가 적고 기후와 천연방파제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항중심의 남항은 전국의 원양 및 연근해 수산물35% 정도가 양륙되며 수산물 수출량은 전국의 75%,수산가공량은 전국 총생산량의 6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어선 소유량은 척수면으로는 그리 많지 않으나 큰배를 소유하기 때문에 어선세력은 전국의 55%정도

부산항의 역사

고 려: 왜구발호의 침탈지구

조선조 : 왜구의 침탈을 방비하기 위한 수군진영의 기지가 되는 한편으로는 그들 왜구를 회유하기 위한 왜관이 부산포에 섰다.

조선중기 : 임진왜란- 왜구들의 병참기지

조선말기 : 일본의 강압에 의한 개항

한일합방 : 대륙침략의 교두보역할

현 재 : 부산지방 총부가가치중 항만 관련사업이 34.2%

 

부산항의 개항

조선초기:태종7(1407)부산포와 내이포(웅천)를 개항-왜구들의 약탈행위

(군사,경제적인 면에서 폐단 발생)

태종10(1418)에 염포(울주)가배량(경남 고성군)을 개항

왜관설치:부산포 왜관의 위치는 부산진자성대부근,포구 정착한 항거왜인의 거주지 범일동

왜관:접대처,무역처,유숙처,외교교섭처

조선중기 : 세종때 포구폐쇄(대마도정벌)

세종5(1423)에 부산포와 내이포를 개항, 세종8년에 염포개항-삼포개항, 왜관설치와

계해조약맺음(왜구의 제한된 활동을 위해)

삼포왜란-3포폐지 임신약조, 정미약조이후 개항장

 

B-5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주민들이 있었는가?

-A-3참조

도시전체에 새로운 언어나 문화가 유입됐나?

1903년 개항과 더불어 신문명이 도입된 전화교환소, 재봉틀.

1915.10 전차운행

1945.9.3 귀환동포

범일동지역,영도 - 임란, 6.25사변으로 피난민과 실향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가난함)

 

B-6 이주민들은 소수민족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일제시대에는 가혹한 착취에 시달린 사람들이 투신자살을 할 정도.(영도대교,태종대 자살바위)

우리고장 부산-부산시

-민족이나 종족집단들은 서로 연관을 가지고 살아왔나?

임진왜란과 일제침략기에는 약탈의 대상이 되어왔었고, 부산항의 개항으로 인해 상거래 무역의 관계가 되어왔다.

-인종차별을 합리화 시키는 법률이 있었는가? 없다.

 

B-7이 도시의 지도자들이 약속을 어긴것이 있나?

문정수 시장의 사과문 발표-선거자금으로 한보로부터 2억원을 받았음이 밝혀지고 시의회에서 사과내용을 발표함 , 택시 분할매각으로 인해 경력사원이 대우되지 못하고 택시만 사들이는 회사로 인해 실업자발생 - 시청과 역앞에서 노조 진행되고 있음

 

B-8.이 도시가 전쟁의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었나?

전투가 벌여진 적 있나?

피흘림이 있었는가?

1592. 임진왜란

1910.8.29-45.8.15(3411개월)일제강점기-

1950.6.25로 인한 기근과 피난민과 실향민으로 인구급증가

1948.10 여순사건 - 좌익계열장병들이 제주도4.3사건 진압지원 반대 무장폭동

1960.4 4.19혁명 -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선 대학생과 시민들 민주혁명

1961.5.16 쿠데타 - 박정희 육군소장등 현역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민주주의 발전중단

1979.10.16-17 - 박정희 대통령 시해,18년간 장기집권시대 종말

부마사태 : 부산시내에서 대학생들과 일부 시민들이 가세한 대규모 소요사태가 벌어져 부산 지역 일원에 까지 소요사태가 번지자 20일에는 마산시(창원)일원에 위수령이 발표됨

부산대생 소요사태에서 비롯된 부마사태는 단순한 시위의 규모를 넘어 위험수위에 육박,국내외에 큰 충격. 29일 부산지역 계엄당국 발표에 의하면 부마사태로 모두 1,563- 51명 즉심회부, 31명은 일반경찰에 송치, 89명 군검찰에 넘겨졌다.

1979.12.12 - 군사반란 신군부의 (전두환)정권장악을 위한 하극상

1987.6 - 6.10민주 항쟁. 부산을 비롯한 전국적 시위 여당 직선제수용

1993.2 - 문민정부 출범 김영삼대통령 취임, 개혁조치 추진

 

B-9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들이 이 도시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아왔는가?

지도자들은 탐욕스러운가?

 

B-10.이 도시에 영향을 끼친 자연재해는?

-1959.9월 태풍 사라 강타 낙동강 범람,850명이 사망.,실종 이재민25만여명 발생

1968.8.1517 태풍 폴리 - 732명사망

1986.8.28 태풍 베라 - 26명 인명피해, 147억원 재산피해. (송전탑 붕괴로 암흑천지)

부산,경남에서 피해 가장 큰 상처

1987.7.1416 셀마 집중호우-350명 사망

1991.8.2024 글래디스 - 103명 사망 [부산일보 발췌]

 

 

 

B-11.이 도시에는 표어나 모토가 있는가? 그 의미는?

21C 釜山未來像

도시계획 목적 :

세계화와 지방화 조류에 부응하는 첨단해양도시 건설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도시기본계획 수립

가덕도 신항만개발, 아시안게임 개최 및 기장군 편입에 따른 행정구역개편 등에 의한 변화요인 과 개발방향을 도시기본계획에 반영

산의 입지적 특수성과 관련한 주변도시의 기능과 역할 정립 및 자치구별 개발계획의 선별적 수 용., 1994년 기준으로 2011년까지를 목표(1997-2001,2002-2006,2007-2011)

 

도시기본계획의 변경의 의의

3차국토종합개발계획, 신경제 제5개년계획 등 상위계획의 반영

부산,경남권 광역 개발계획상 가덕도 신항만개발 등 주요사업의 연계수용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기장군의 도시계획 및 개발방향의 수립

2002년아시안게임 개최와 관련한 도시여건 변화의 수렴

 

1.도시발전방향 : 21세기 세계첨단해양도시( super marine technopolis 21:SMART21)건설을 도시개발 목표로 설정하여 Tri-Port Air-Port,Sea-Port,Tele-Port를 갖춘 명실공히 세계1류 수준의 비약적 도시를 지향

 

2.21세기 부산의 도시성격

항만물류도시-세계 5대 중심항에 속하는 항만 물류기능을 갖춘 선진도시

정보산업도시-정보화시대에 부응하는 정보,첨단산업구조를 갖춘 생산도시

문화관광도시-문화 예술 관광이 조화롭게 살아 숨쉬는 국제도시

복지환경도시-삶의 질이 향상된 쾌적한 환경과 더불어 풍요롭게 살아가는 복지도시

 

3 .21C 부산광역시 미래상

국제적차원 - 환태평양 동북아 관문도시

환태평양 경제권의 입지중심성 확산

동북아 관문 도시기능의 지정학적 특성 부각

국제항로상 Hub 항의 역할담당

 

국가적차원 - 수도권대응 거점도시

국토균형 발전과 국토 공간구조의 다핵화

수도권 집중의 경제 정보 금융기능 분담수행

생산 물류 유통기능의 거점강화

 

지역적차원 - 동남경제권 중추도시

2도시 위상과 광역적 중추도시 성격확립

과학산업단지 조성에 의한 첨단기반 구축

자족적 지역경제권의 형성 및 산업활성화

 

도시적 차원 - 친환경적 해양도시

첨단산업과 관광중심의 해양지향적 도시개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요구의 보편화

친수공간확대와 자연과의 조화강조

 

 

모토 또는 표어 -

시정방침 - 21C 새부산 건설, 아시안게임 완벽한 준비, 시민생활의 획기적 개선

지역경제의 새로운 도약, 문화관광의 활기찬 진흥

기업하기 좋은 도시 만들기,SMART21(가칭-이름 공모하고 있는중)

아시아는 부산으로 ,부산은 세계로! etc.

부산시의 장기발전목표 21세기 세계첨단해양 도시건설

부산 제2회 동아시아경기대회1997.5.10-19

함께여는 평화제전 하나되는 동아시안Peace, Unity,New East Asia

아시아는 부산으로 부산은 세계로

시민헌장

1.튼튼한 몸과 올바른 마음으로 내 고장 건설에 앞장섭시다.

2.부지런히 일하고 어린이를 잘 길러 즐거운 가정을 꾸며 갑시다.

3.이웃끼리 서로 믿고 서로 도와서 명랑하게 정답게 살아갑시다.

4.공공시설을 아끼고 질서를 세워서 자랑스런 사회를 이룩합시다.

5.전통을 이어받고 바다를 개척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합시다.

 

B-12.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음악을 즐겨듣는가?

그 음악이 가지고 있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고려시대 - 정과정곡(연군의 정을 노래함)-정서(중앙정계에 진출한 대표적인 인물)

[돌아와요 부산항에]-꽃피는 동백섬에 봄이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부산의 애환을 그리는 노래. 부산을 대표로 하는 꽃-동백꽃, -갈매기, -상징들이 들어감에 따라 부산이 소개가 되어지고 있고 전쟁으로 인해 헤어졌던 형제들에 (동포,가족,연인)대해 그리워함으로 가득한 이 땅의 과거의 슬픔이 담겨있다. 귀환동포들에 대한 노래일수도 있을것으로 추정해본다.

 

B-13. 오늘날 이 도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도시의 긍정적인 특징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말은 무엇인가?

-인구 400만의 국내 제2도시, 국내 최대의 항만도시, 동남 경제권의 중추도시, 환태평양시대의 전진기지,동아시아의 거점도시, 세계 교역의 중심도시,

부산사람들은 변함이 없다. 화통하고 소탈하며 의리가 있다.(정의감)

정의감은 어디서 오는가?

첫째는 서민층이 더 많이 모여산다.

둘째는 개방성

세째는 부산의 역사적 풍토-조선시대에도 부산은 양반의 터전이 아니라 중소상인과 말단공무원과 서민들의 도시였다. 개항을 통해 선진문물을 가장 진취적으로 받아들였던 곳이 부산이었다. 역사발전을 두려워하는 수수세력들이 약했음을 증거

넷째는 6.25의 경험-피난민들이 보호를 받음(착하고 억센기질)

다섯째는 경제개발 전방기지로써 겪었던 보람과 설움 .

 

이 도시의 부정적인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들은 무엇인가?

-바보같은 시민,시끄럽고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에 대해 표현하는 농담들,(경상도시리즈)

자랑할 것이 많은데도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수줍어하며 불평할 잏이 많은데도 꾹 참아버니며 참다가 도저히 볼 수 없다고 판당할 때는 ''하며 들고 일어난다.

('부산2020' '907월호 조갑제의 나의 부산론에서 발췌]

 

 

2.자연적인 조사 (Physical Research)

 

1. 이도시에 대한 여러가지 지도를 찾도록 하라 . 특히 오래된 지도를 찾도록하라 이도시

의 외형적인 특징들과 관련하여 어떤변화가 일어났는가?

 

조선조의 성종 7(1476)에 출판된 해동제국기의 (동래부산포지도)가 그 당시의 예조좌랑 남제가 1474년에 부산을 시찰했을 때 기록한 것으로 부산의 옛모습을 알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일제 강점하의 부산 매축지들 -용두산 주위에 자리잡은 왜관 자리는 부산진 지역(지금의 초량, 수정, 좌천동)과 동떨어져서 부산 개항의 1896년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변지였다 부산의 개항을 일본이 무력으로 강요한 것은 일본이 한국과 대륙을 침략할 거점을 부산에 구축하자는 저의 였다 왜관이 일본전관거류지가 되자 일본인은 근대적 시설을 서둘기 시작했다. 그들 나름의 도시를 계획하여 용두산 일대를 도시 중심지로 개발 형성해 갔다. 반면 부산포의 중심지였던 부산진 쪽이 변지로 바뀌어갔다. 개항당시의 용두산 주변일대는 산세가 바다에 바로 닿아 길을 만들고 집을 지을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그들의 본거지인 용두산 일대를 확장하기위해 바다를 매립해갔다.

*부산해관부지의 매축공사- 부산에서 바다를 매축한 맨처음은 개항이후 부산에 해관(지금의 세관)이 서고 그 해관 부지를 조성하기위해 매축한 매축지가된다. 1888년 영국인 하문덕(Sir Robert Hart) 이 해문장으로 취임하자 구한국정부에 부산해관 북안일대(지금의 세관남쪽바닷가)와 북빈(북쪽 바닷가란뜻)일대를 1888년에 매축했다.

*부산매립회사의 중앙동 매축-이 매축회사는 북빈일대를 매축하기위해 구한국정부의 허가를 얻어 1902년 에 착공하여 1909년에 준공했다. 이 공사에서 얻어진 토지는 41,374평이었다.오늘날의 중앙동의 길과 세관과 중앙동의 옛날의 부산 본역부지 일부와 남쪽시가지인 옛대교동 (지금의 중앙동)이 이때 매축된 자리가 된다. 이로서 일본전관거류지에서 바닷가를 따라 북쪽으로 나아갈 터전이 이루어졌다.

*영선산의 착평공사-부산의 도시형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이 공사였다. 이 영선산 착평공사를 부산착평공사라 한다. 지금의 영선고개 아래의 부원아파트와 중부경찰서와 중부 소방서와 노동회관자리에 쌍산 또는 쌍악이라하는 산 둘이 바다를 향해 밀려나 있었다. 그 쌍산의 하나는 해발 9미터의 영선산이었고 하나는 해발36미터의 영사관산이었다. 이 영사관산은 영국의 영사관을 짓기위해 구한국정부로부터 영국이 조차를 받았으므로 영사관산이라 했다. 이 두 산이 한일합방 1년 전까지만해도 지금의 영주동에서 중앙동 동광동 쪽을 가로막아서 일본거류민단이 보아 이 두 산이 북으로 나아가는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비추어졌다. 그보다 더 큰 요인은 그 쌍산을 헐어서 그 밑자리를 평지로 만들고 거기서 나는 모래로 바다를 메워 터를 넓혀 부산역과 부산항의 부두를 연계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이 대륙침략의 관문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경부선철도가 부설된 처음의 경부선지점인 부산 본역은 이 쌍산 때문에 남으로 뻗지 못하고 초량에 있었다. 그때의 부산부두인 지금의 제1부두가 중앙동의 부산세관 동쪽에 있어 서로 사이 연계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해륙운송의 연계가 원활히 되어야만 대륙침략에의

인적 물적 수송의 완벽을 기할 수 있었다. 이 때 얻어진 땅은 44780평이었다. 이 영선산과 영사관산의 쌍산이 허물어진 자리는 지금의 영선고개에서 그 아래쪽인 중앙동의 40계단과 중부경찰서와 부원아파트의 절벽 자리로부터 바다쪽으로 향한 위치가된다.

이 공사로 부산본역은 초량에서 중앙동으로 옮겨져 부산부두와의 연계가 직결되면서 일본에서 오는 사람과 자료는 배에서 바로 철도로 옮겨지고 대륙에서 오는 사람과 자료 또한 바로 철도에서 배로 옮겨졌다.

*부산진매축공사 - 1926년 우암리를 포함한 방대한 지역의 매축된 면적은 305690평이었다. 부산의 지도와 해역을 바꾸어 놓은 이 지대는 범일동에서 우암동까지 이어져 공장지대로 유망한 곳이 되었다.

*영도 대풍포의 매립공사-영도 대평동의 대풍포는 주위로 뭍이 둘러싸서 배가 바람을 둘러싸서 배가 바람을 대피하는 포구였다. 부산은 개항이되고부터 일본선박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선박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배를 댈 선창이 불충분했다. 그때 일본인은 이 대풍포에 눈독을 들였다. 일본의 소형선 특히 어선들을 이 대풍포에서 급수를 하고 바람을 피하고 어선을 건조 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지금의 대평동 중심지에 1926년에 42백평을 매립했다.

*남항매축공사-남항을 완전한 항만으로 축조하고 지금의 남부민동 충무동 남포동 해안을 매립하여 하양장(짐을 부리는 곳)을 설치하고 기간도로와 상가와 시가지를 설비하여 연안무역항과 어업만을 형성하려는 이 공사는 그규모가 컸다. 남부민동의 방파해벽을 축조한 텃자리로부터 지금의 남부민동 충무동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바닷가의 길이 약 1천여간,폭 평균1230간을 매립하고 호안시설을 하여 면적 145240평을 형성했다. 이 면적에서 도로와 다리, 그리고 물양장등에 5595평이 들었다. 이 공사가 끝나기는 1940년 무렵이었는데 이 공사가 완공됨으로써 상.어업을 겸한 부산의 어업무역항이 형성되었다. 지금의 남포동 바닷가 텃자리와 자갈치는 이때 생긴 것이다. 이 매축공사가 완료됨으로써 부산의 남항과 북항의 구별이 구조상으로 확연해지고 충무동과 남부민동의 아랫길이 형성되어 송도와의 교통이 순탄해졌다.

*북빈연안공사-부산부의 사업으로 지금의 세관쪽에서 연안여객선부두로 이어지는 바닷가 1128미터 길이에 배가 닿게 하는 계선안벽과 물량장을 축조했다. 이때 북항연안 34백평이 매축되었다.

*영도대교의 부대공사-이 매립공사로 남항과 영도에 3만평의 바다가 매축되었다. 대교 양쪽에는 선류장도 구축되었다. 지금의 시청자리에는 용두산에서 이어져내린 용미산이 1932년까지는 바닷가에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용미산은 영도대교를 가설하고 시가지 간선도로를 축조할때 착평되어 그 흙과 돌은 바다를 메우는데 쓰였다. 그 용미산 텃자리는 영도대교의 텃자리 일부가 되고 시청부지가되고 간선도로가 되었다.

*1963년에는 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동래군의 북면(지근의 금정구의 일부)과 구포, 사상면, 북면 및기장면 송정리를 편입되어 대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1978년에는 낙동강 삼각주 지역이,1989년에는 김해군의 가락면과 녹산면, 그리고 창원군의 천가면 일부가 편입되면서 12개의 자치구가되며 면적이 대폭 늘어났으며 해안매립 등으로 199312월에는 남한 전체 면적의 0.53%를 차지한다.

 

 

2. 이 도시를 설계한 사람이 누구였는가?

그들중에 프리메이슨이 있었는가?

동래지역의 럭키 아파트 부근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3. 이 도시에 대한 원래의 설계도나 배치도에 어떤 의미있는 구조물이나 상징물이 첨가되

어있는가?

*유엔묘지:유엔묘지는 1950625일 한반도에 전란이 일자 한국을 돕기 위해 16개국의 전투지원국과 5개국의 의료지원국으로 구성된 유엔 장병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용전하다가 전사한 위령을 안치한 곳이다.

1950118일에 묘지를 조성설치하고 19551115일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유엔관리의 묘지로 1959년 유엔과우리 정책 사이에 묘지의 항구적인 관리및 사용을 위한 협정이 성립되었으며, 1974년에는 관리권이 영령을 안치한 참전국 11개국으로 구성된 국제연합관리위원회에 이관되었다.정책에서는 묘지보존만으로 참배객에게 6.25의 참상 및 유엔군 참전의의를 올바로 감동있게 전달하기에 부족하여 전사박물관을 건립하여 당시의 유품자료를 전시하므로 민족적 비 과 참전실정을 입체적으로 부각함으로 반공안보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유엔참전기념회관을 건립계획하고 있다.

*범어사-범어사의 창건은 두가지 설이 있으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의상이 당나라에서 귀국한 678(문무왕 18)에 창건했다는 설이 타당하다. 당시에는 왜구를 진압하는 비보사찰의 하나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임진왜란때 불에 탔으나 1602년 관 선사가 중건했으나 다시 소실했다.현재 선찰대본산이란 이름으로 경남 3대 절의 하나이다. 중요 유물로는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 있고 대웅전 앞의 거대한 칠층석탑이 있다.

*충렬사- 부산시 동래구 안락동에 있는 것으로서 임진란 때 순절한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을 봉축하기위해 매년 송공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시초가 되었다. 1652년 송상현의 학행과 충절을 높이고 선비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하여 안락리 현재의 자리에 옮기고 사당을 창건한 다음 강당과 동.서제를 지어 선비들을 수용하게 하여 안락서원이라 하였다. 그후 여러 해 많은 부사들이 바뀌어 감에 따라 여러 공신들을 합장했다. 일제시대에는 이 충렬사의 제사 지내는 것 여러모로 방해를 받았다. 1978년 정화공사에 따라 낡은 사우가 현재 (경영확장 25,600, 건축공사 본전외 8, 참배로, 주차장, 동산조성, 충렬탑 조성,조경등) 대대적으로 정화한 후 부산지방에서 순절하신 모든 분의 위패를 직책 또는 증직의 차순에 따라 봉안하였으며 매년 5월 시민의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다.

 

 

4. 중요한 건축물들의 건축양식이나 장소나 위치적인 관계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특히 이도시의 정치,경제,교육,종교적인 세력들을 나타내주는 건축물들이 있는가?

<구별 두드러진 특징과 발달세력, 그리고 지역>

*강서구-기름진 삼각주 평야와 넓은 하안 평야로 간석지가 발달.주로 1차 산업 발달로 농업과 어업이 대부분이고 그린벨트에 속해 있어 공업은 미약하나 임해공단 조성 계획으로 공업발전 잠재력은 매우 크고 김해국제공항이 자리잡고 있다.

*금정구-대표적으로 금정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분지지형을 이루고 동부에는 수영강이 있어 온천천이 구의 중심부에 흘러 주요교통로와 신흥주택지구가 발달하였다. 이 구의 생활권이 대부분 동래구에 의존하고 있어 상업중심의 발달 미약하나 전철 개통됨에 따라 동래부의 역사와 금정산의 자연경관이 어우러져 관광자원과 역사유적이 풍부하다. 부산시에서는 범어사-금정동-온천장을 잇는 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남구-광안동 일대:농어촌 지역으로 영도 제외하고는 부산에서 가장 해안선을 끼고 있고 수영의 영향권에 있어 어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었으나 1960년대 후반에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농업은 미약하다.우암동을 중심으로 부산시 공업지대 중의 하나이며 남천동 일대는 업무기능 탁월하고 수영동 일대, 해운대와 광안리는 교통이 편리하여 각종위락 시설과 중심기능이 집중되어 있다.우암동 일대는 주택지구로 광복과 6.25 때 이주한 사람들의 주거지구로 불량주택이 많아 도시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용호동에는 나환자촌이 있다. 특히 해안선을 끼고 있고, 과거 어로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관광.민속자원이 풍부해 해수욕장,오륙도,신선대가 잇다.

*동구-조선시대 국방의 요지였으며 외국과의 관계가 가장 활발했던 곳으로 개항이후 중구와 연결, 경부선철도와 전차의 개통으로 크게 발전되었으며 현재 시장을 중심으로 영세민의 싼 노동력은 이용한 섬유공업이 발달하였다.범일동은 부산시교육위원회,시민회관등 교육.문화기능이 탁월하고 상업기능은 부산진시장(조선시대부터 있어 온 가장 오래된 시장)과 자유시장의 도매상으로 이루어지며 좌천동은 중국인의 텍사스 촌이 있다. 피난민들이 형성한 불량 주택을 재개발하고 있으나 높은 주택.인구밀도의 문제지역으로 남아 있고 부산역과 부산진역이 있어 편리하고 부산항이 위치해 교통의 중심지이다.

*동래구-이전까지는 명륜동,안락동일대가 동래부와 부산일대의 중심지였다. 농업은 산기슭에서 부분적으로 행하여지며 상공업이 주된 산업이다. 수안동.낙민동은 관공서와 금융기관,병원상가,학교 등이 밀집된 부산시의 부심지역으로 부산지방국세청이 위치하는 연산동 일대도 상업기능 지역이다. 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전철이 통과하며 도로망이 발달. 사액서원인 안락서원 자리에는 성역화사업으로서 충렬사가 잇고 도래온천도 주요 관광지이다.

*부산진구-개금동일대의 침식평지는 서면에서 북구로 통하는 주요교통로로 이용되며 마비치고개는 옛날 동래와 부산을 잇는 유일한 교통로였으며 임야는 대부분 녹지지역으로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된다. 광복동.중앙동일대는 오래전부터 공업의 중심지였으나 상가와 주택지가 형성되면서 공장들이 사상.신평.양산공업단지로 이전하고 있으나 아직도 대규모 신발공장들이 위치해 있어 고무공업의 중심지이다.

*북구-이곳은 부산 최대의 공업단지로 1960년대에 조성되었으며 주로 제조업체가 입주해 있다. 공업단지 조성에 따른 문제점으로 도로의 부실, 배수시설의 빈약, 이면도로의 비포장등 기반시설의 미흡과 시가지확장에 기인한 환경문제가 있다. 상업기능은 사상서부시외버스터미날과 구포역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사하구-조선시대에는내륙수운으로 이용된 낙동강 하구에 위치하여 군사상 요충지로서 다대진이 설치되고 구봉산성 등의 성곽이 축성되었다.1986년 법정공단으로 지정된 장림동 일대는 임해공업단지이고 해수오염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1987년 부산시의 공업용수와 도시용수 공급을 위하여 낙동강 하구언은 하단동-을숙도-명지를 잇고 있으며 이로 낙동강 하구의 지역개발사업이 본격화되엇다. 지리적 여건으로 역사유적지와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서구-동대신동은 부산의 대표적인 주택지구이고 전국수산물 유통의 30%를 차지하는 부산공동어시장과 수산물가공공장 등이 있고 부민동 동쪽 평지에는 고등법원,지방법원,지방검찰청 등이 있다. 대신동은 학교가 밀집해 교육의 중심지 역활을 하고 있다.

*영도구-조선시대에는 국마를 길러 목도라고도 했으며 주요 도서로는 조도와 생도가 있는데 조도는 아치섬 또는 동백섬이라고도 불리며 영도와는 방파제로 연결되어 있다. 생도는 태종대 남쪽에 있는 무인도로 동이 또는 주전자처럼 생겼다하여 동이섬, 주전자섬 라고도 한다.이곳에 우리나라 지도작성의 기점이 되는 삼각점이 된다. 청학동을 중심으로 6.25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된 불량주택에 대한 개량사업이 행하여지고 있고 태종대,망부석,자살바위등 부산의 대표적 임해관광위락지역이다.

*중구-개항이후 부산의 새로운 중심지로 변모하는 지역으로 시청을 비롯하여 100여개의 금융기관과 7000여개의 사무실이 집중된 행정기능.상업기능.중심업무기능지역이다. 상권은 광복동에 집중하여 국제시장이 있고 남포동은 서비스업 밀집지로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그리고 종교활동의 중심지이다.

*해운대구-구의 대부분은 산지이며 중앙에 장산이 위치한다. 우동의 해운대역 주변이 관광기능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었고 신흥고급주택지가 있다. 대표적 임해 관광지로 대규모 위락시설이 건설되었다.

 

*교육

-개성학교: 부상에서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인 학교이며 부산항 경무관이었던 박기종이다. 그 위치는 지금의 영주동이며 약 1000평의 부지에 6동의 교사가 있었고 1896년 약 100명의 생도가 수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의 부산상업고등학교와 개성중학교,봉래국민학교의 전신이다.

-부산진일신여학교: 부산에서 최초로 설립된 근대식 여자학교이다. 호주자로교 선교회가 그 포교활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교육사업이다. 좌천동의 한 초가에서 소녀들을 모아 주간학교를 연 것이 첫 출발이다.

-명륜동: 동래구 중앙에 위치한 이곳은 동래군 읍내면지역으로 동래향교가 위치하고 있어

(향교골),(교리), (객달리), (신향교동)이라 칭하였다.

-대신동- 서구에 위치하고 교육의 중심지이다.

-사직2-7개의 학교가 쇠미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학생들의 등. 하교시와 사직종합운동 장의 크고 작은 행사로 인한 교통혼잡이 심화되고 있다.

*종교

중부지역내 천주교 부산교구청과 대각사 등이 있어 종교활동의 중심지이다.

-카톨릭 센타:대청동에 위치해 있고 19825월 천주교 부산교구 유지 재단(이사장 이갑수 주교)에 의해 준공을 보았다.많은 문화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해 지역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영적인 조사 참조

 

5. 이러한 건축물들이 하나 또는 그이상이 있는 땅중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가? 처음는 누가 그땅을 소유했는가?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을 진주에서 부산으로 옮겼다가 1983년 도청이 창원시로 옮겨갔다.

-임시정부수립: 6.25 사변이 일어나자 1950818일부터 1953815일까지 임시수도로 반격의 기지가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피난민이 몰려들어 인구가 급증하였다. 임시수도기념관이 서구 부민동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건물은 당시 피난정부청사로 사용했던 곳이다.

-낙동강 하류 댐 건설:전두환 대통령때 낙동강 하류 개발 사업으로 댐 건설했는데 잘못된 설계로 많은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댐물이 빠지지 않음으로 하천이 썩고 생태계 파괴의 큰 어려움에 빠져 있다. 이곳은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중요 지점이라 할 수 잇다.

-러시아공사관터:복병산에서 동쪽지대를 러시아가 조차하기 위해 18925월 측량을 하고 표목을 세웠우나 일본의 방해로 러시아는 조차를 못했지만 그 자리를 러시아가 공사관을 지으려 한다는 말이 오래 남아 있어 러시아공사관터란 이름을 가졌다.

-구 대동관:용두산 주위에 초량왜관이 형성되어 있을때 왜관을 출입하는 문인 수문과 설문이 현재의 영주동에 있었다. 그 수문과 설문사이에는 왜관을 관리하는 관아와 함께 객사인 대동관이 있었다.대동관은 조선왕조의 역대 국왕의 전패를 봉안한 곳으로 숙배소라고도 했다.

 

6. 이도시의 공원과 광장이 축조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가?

누가 그것들을 조성하였으며 그것들을 만들기 위한 자금을 대었는가?

그이름에 의미는 무엇인가?

*대신공원:서구 동대신동 구덕산 기슭에 있는 공원으로 1901년 중구와 서구에 식수공급위해 두개의 저수지를 건설하였으나 1960년 상수도 확장사업으로 낙동강의 상수도원으로 제 구실을 잃고 19682월 도시 공원으로확장,고시하였다. 주거지역과 인접하여 시민의 산책,등산길로 이용되고 있다.

*자성대공원:동구 범일동에 위치한 공원으로 원래 부산성의 자성,환산성이라 불리기도 했다.임진왜란이 끝난 뒤 자성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진동문.금루관.종남문.구장루라 일컫는 4대문을 세우고 부산첨사영으로 사용하였으나 일제 때 철거.1974년 동문과 서문의 신축을 비롯해 대규모 복원 및 정화공사를 하여 시민의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공원안에는 최영의 비각과 명나라의 만세덕의 공덕비 및 만공단,천만리 장군의 유적비가 있다.

*용두산공원:부산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 공원은 옛부터 소나무가 울창하여 송현산,초량소산이라고 했고 산의 형태가 용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고 용두산이라 했으며 지금의 시청 자리는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하여 용미산이라 한다.

*금강공원: 바위 위에조그마한 둥근 샘이 있어 항상 물이 차 있고 물빛은 황금색과 같다하여 금정산이라 부르고 흡사 작은 금강산과 같다하여 일명 소금산이라 한다. 금강공원아란 말은 여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공원의 진입로 입구에는 망미루가 있으며 진입로 좌우에는 노송이 질서정연하게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정문에서 약 50미터 올라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케이블카가 복선으로 설치되어 있어 부산시가지를 관망하게 되는데 시야에 아름답게 비치는 전경은 장엄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경내에는 5개의 절(사찰 및 암자)이 있으며 그 중에서 금정사는 창건지 약 100여년이 된 사찰로 대웅전비롯하여 6개의 건물이 있다. 공원 후문에서 조금 더 가면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

*중앙공원(대청공원):19709월 공원고시를 하고난 뒤 19839월 충혼탑과 함께 공원조성 완료했다. 중앙공원의 중심지는 영주2동으로 대청동과도 가까와 대청공원이라 했다.

충혼탑,야외조각공원,소해 장건상선생상,오제봉 서비,대한해협전승비등이 있다.

*어린이 대공원

에덴공원

 

*충무로 광장-대정공원이 1918년에 설치되면서 생겨 났는데 이곳이 충무로 광장이다.이 광장에는 도로 개설로 인해 로타리가 생겨났고 이전에는 부산에서 가장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군중들이 모이는 장소로 부산의 심장부와도 같은 자리였다고 볼 수 있는데 소화정이라고도 불리었다.

*부산역 광장-

 

7. 이도시의 조각상과 기념탑의 배경과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들중에는 마귀적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조물주보다 피조물을 영화롭게 하는것이

있는가?

* 십자산-거제1동에 있는 것으로서 이사벨여. 중고의 뒷산으로 꼭대기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어서 그렇게 부르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

* 복산동의 학소대: 학의 형상과 관련 복천동 고분군이 학의 몸통. 서장대가 왼쪽날개. 동장대가 오른쪽 날개로서 학이 날개를 활짝 펴고 동래의 진산인 윤산(구월산)을 향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하는데 이 학소대는 그 학의 집으로 지금의 법륜사 주위 일대가 된다.

*온천1동 뱀굴: 옛날 하천변 큰바위 밑에 평평한 황토의 제단모양으로 된 뱀굴

*온천1동 골목 할머니 바위:이 바위를 보고 소원을 빌면 액운을 면할 수 있다는 금강공원내 황룡사 입구에 있는 바위.

*부산탑은 부산을 대표하는 탑으로 해발 60미터에 높이 120미터로 세워졌으며 이 탑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산시 중심의 길게 뻗은 시가지와 아름다운 경관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부산탑을 세운 목적을 적은 비에는 동상으로 비천룡이 날아가는 기상을 하고 있으며 좌대에는 통일의 꿈과 번영의 의욕이 세계로 뻗는 항도 부산의 큰 뜻을 새기고 수천년을 이어온 조상들의 높은 얼을 받들어 동백꽃과 오륙도가 상징하는 부산시민의 슬기와 기상을 영원히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용두산 충혼탑-6.25당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경남,부산지방의 군경전몰 장병을 추모하는 충혼탑과 영령실이 있으나 지역이 협소하여 대청공원으로 이전했고 부산탑 좌측에는 자유당 독재정치에 항거하다 순절한 4월 민주혁명 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순직장병 추모비-19701224일 강우철.김대로.이기춘.김규삼(암벽빌라 작업중 생명을 잃음) 젊은이들의 희생정신과 그 영혼을 위로. 1981년 태종대공원 순환도로에 세움.

*6.25참전국 의료 지원 기념탑- 6.25때 유엔결의와 적십자 정신에 의해서 의료지원단을 한국으로 파견. 유엔군과 한국군의 전상자 치료에 헌신한 외국 의료 기관의 업적을 기리어 기념.

*전차 종점 기념비- 전차가 영도의 대중교통에 편익을 준것은 33년간이다. 영도 종점 자리가 대중교통에 크게 이바지한 전차와 함께 옛것을 되새기는 역사의 한자리로 남게 되었다.

*기타-도개식 영도 대교 기념비,스웨덴 참전 기념비,하마비,한용운 시비,김정한 문학비등이 있다.

 

*충무공 이순신 동상-용두산 광장 중앙의 2층 기단위에 늠름한 자세로 우뚝 선 무인 동상이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다.

*용두산공원의 용상- 광장 동북쪽으로 화강암 대석 위에 용두산을 상징하는 청동으로 조상되어 있다. 대석에는 오석으로 노산 이은상의 (부산탑 찬가) 가 일중 김충현의 글씨로 새겨졌는데 이 용상은 1973년에 세워졌다.*충렬공 송상현 선생 동상-서면에서 동래쪽을 향해 오는 고개위에 10미터 동상.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에 순사한 송상현 공의 동상.

*정발 장군 동상

*사명당 동상-어린이 대공원 순환도로의 동북 쪽에 위치.

*대한해협전승비는 중앙공원에서 150미터쯤 남쪽에 전승탑이 높은 기개를 상징하듯 한줄기로 꼿꼿한 조형물로 되어 있다. 1950625일 전면남침을 자행한 북한이 후방교란을 목적으로 남파한 무장선이 우리 해군 백두산함이 부산 해에서 26일 새벽에 침몰시킨 해군 초유의 단독 해상전투였다.

 

8. 이 도시의 특징을 이루는 다른 예술품이 있는가?

특히 공공건물의 안팎이나 박물관 또는 극장 안에 그런 것이 있는가?

*어린이 대공원의 김소월 시비

*해운대 해수욕장 녹지대에 위치한 노래비(돌아와요 부산항에:부산인의 애환을 그린 노래)

 

9. 이도시에는 고고학적으로 유수한 지역들이 있는가?

있다면 그것들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영도대교:1934년 부산 본토와 영도를 있는 다리로 부산 대교라고도 했다.한국 전쟁때에는 피난 온 사람들이 고향잃은 한을 달랬던 추억의 장소이다.

*전차:1915년 부산진과 동래 온천장 사이에 전차가 개통되었으며 이듬해 시내 전차도 개통됨.

*중부에 있는 시청이 연산군으로 옮길 예정에 있다.

 

10. 낙태시술의원, 음란물서점이나 극장,매춘지역, 도박장, 술집, 동성연애 행위등과 같은

매우 가시적인 죄의 거점은 어디인가

검증 자료 중심으로 서술.

*대표적 매춘지역

-완월동 사창가는 남포동에 근접한 충무로 초장동 일대 인데 동양에서 가장 큰 사창가(윤락가)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외국인을 위한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외국선원,군인 일본인 여행자들이 이용하는 곳이기도 하다.1907년에 공인된 윤락가가 골목에 들어섰고 공창에서 사창으로 바뀌어 여전히 매춘지역으로 남아닜다.90여 년 동안 한 지역에서 지속되어진 음란행위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부산지역에 영향력을 흘러 내고 있어 음란,쾌락,배금사상,폭력,가난의 영을 상징하는 견고한 진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것과 함께 낙태가 자행 되고 있다.

-부산역.부산항:부산역은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관문으로 숙박업과 향략,윤락가가 형성되어 있다.최근 러시아인이 몰리면서 불법무기거래와 살인까지 자행되며 화교들은 2세 문제로 이주하고 있고 소망없음과 방황,거짓,속임수가 넓게 자리잡고 있다.

*부산의 번화지역:

-중부.남포동 일대:주요 관공서가 자리잡고 있고 부산의 중심지인 동시에 악한 영들의 중심지로 가장 번화하다. 영화관,술집,백화점,패션가가 밀집되어 있어 소비성이 강한 지역이다.

-광안리.해운대:외곽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되면서 커피숍,카페가 생기면서 젊은 청소년들의 마약과 술등의 향락과 퇴폐문화가 번져가고 있다.

-점술원:영주동과 범일동(무속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 수많은 무당집과 철학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영도지역은 아직도 밀집되어 있다. 이런 무속신앙은 6.25피난민들의 헤어진 가족생사를 알기원하는 사람들로 활성화되고 있다.

 

11. 탐욕, 착취, 가난, 인종차별, 폭력, 질병이나 잦은 사고가 빈발하는 곳은 어디인가?

* 가난한 지역

-거제동:오늘날의 거제동은 조선시대 서면에 속하며 동리명을 거벌리라 하였다 옛 거제1동은 논과밭, 미나리,갈대밭으로서 시골의 여늬마을과 다를 바 없었으나 1950년대 터 가옥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지금은 동 전체면적의 70%가 군부대 및 학교, 기업체가 점유 하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십자산 동산은 지금은 영세민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는 고지대 영 세민 밀집지역이 되었다.

-거제3:부산진구와 경계가 맛물린 거제로, 거제천의 중간지점인 주택 밀집지역으로서 거제 시장 청과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영세상의 밀집지역(개구리산-상이군인 밀집지역)

-거제4: 지금부터 60여년전 철도관서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택지역이며 저지대 주민과 고지 대 주민과의 빈부격차가 심한 작은 마을이다.

-연산3:금련산 자락인 이곳 마하사로 오르내리는 길가는 저소득층 밀집지역으로서 주거환 경 개선사업과 주택개량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되어가는 모습이다.

-영주동의 판자촌: 6.25전쟁 때 피난민이 몰려 들었다. 부산은 30만 수용능력 밖에 없었는데 피난민은 더 많았다. 그래서 산비탈 개천가, 골목이나 길섶 또는 절이나 교회등 빈터에는 임시변통의 판자집이 들어섰다. 판자집이라 하지만 실제 판자 아닌 레이션박스의 빈 껍데기에 기름먹인 루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집도 임시정부의 정부기관이 집결해 있고 교통이 좋고 상가가 많은 중구지역인 영주동,대청동, 부평동 산비탈과 용두산 주위로 몰려 들었다. 보수천에는 판자로 된 수상가옥이 서고 산비탈에는 굴을 파들어 간 집도 있었다.

 

*인종차별

대체로 인종차별이나 편견이 없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우범지역(신문 참조)

범죄발생 북 부:14.004

부산진:13.768

남 부:12.550

동 래:10.393

영도.중부.강서.동부:낮은 편이다.

강력범죄 북부.부산진:많다

강서.중부 :적다

절도행위 부산진:1418

북 부: 990

폭 력 부산진-북구-해운대 (높은 순서)

동부.영도

 

*화재발생

1995.12. 국제시장 대 화재

북부 353,부산진 297,동래 211,사하 208,중부 174.

 

12.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학살이나 전투나 살인을 통하여 피를 흘린 장소는 어디인가?

역사팀 참조.

 

13. 나무,언덕, 돌 또는 강의 위치가 외관상 의미있는 모양을 갖추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높은 산들이 대부분 동해안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동쪽이 높고 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부산은 높은 동쪽의 태백산맥의 끝자리가 남해를 낮아져 내린 말단부가 되어 산은 낮지만 급경사의 곳이 많아 산지 교통의 지름길인 고개가 많았다. 고개를 넘으면 또 고개에 부딪혔다. 그러나 교통수단의 발달과 도시개발로 고개는 깍여내려 낮아지거나 나선형 구빗길을 만들어 우회를 하거나 굴을 뚫어 고갯길을 피했다. 부산이 여느 도시와는 달리 터널이 많은 것도 산지의 높은 고개가 많기 때문이다.

* 신좌수영고개-지난날은 가파른 고개로 옛부산과 옛동네 사이를 오가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만했다. 지금의 부산진시장 자리에 있었던 부산장으로 동래사람이 오갈때도 이 고개를 넘어야 했다. 이 고개는 옛부산과 옛동래 사이에 있었던 유일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고개를 말 날으는 고개라하여 마비을이현이라했다. 그리고 이 고개를 모너머 고개라고 했는데 못 넘어가는 고개의 뜻이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국도를 만들 때 산 꼭대기를 깍아 전포동과 양정동의 산 밑자리를 메우고 부산진과 동래사이 전차길을 부설할때 깍아내려 완만한 경사의 길이 되게했다. 하나의 고개가 말 날으는 고개, 모너머 고개, 신좌수영고개로 이름을 달리한 것은 시대와 세태의 추이를 보여준 것이다.

*인생문고개- 동래구의 칠산동에서 명장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람 가운데 이곳에서 피해 달아난 사람은 모두 살아났다고 인생문고개라 한다. 이고개는 죽은 사람들이 나가는 문이었을 것이다. 본래 성내에는 무덤터를 둘 수 없으니 동래성에서 무덤터로 가려면 지금의 명장동쪽밖에 갈 곳이 없다.

*톳고개- 배산의 동쪽에 있었던 고개로 지금의 연산1동과 9동에서 망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만덕고개-동래온천장과 구포 사이의 금정산 능선에 난 고개를 만덕고개라 한다. 만덕사가 있는 고개였기 때문에 만덕고개라 했다.

*문현고개- 지금의 남구 문현동과 대연동을 넘나드는 고개를 문현고개 또는 대연고개라 했다.황령산이 용호반도로 이어지는 능선에 난 고개이다. 이고개를 지게골고개라 한 것은 지금의 문현동로타리 부근은 양쪽 산이 오목하게 앞뒤를 둘러싸서 바다바람을 막아준다.

*구덕포 노송

*오륙도-밭섬(등대섬).굴섬,송곳섬,수리섬,방패섬,솔섬등 여섯개의 섬으로 되어 있으나 썰물때는 방패섬과 솔섬이 연결되어 다섯개의 섬으로 보인다 하여 오륙도라 한다.시민들에게는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적 지형물로 인식되어 있다.

14. 이도시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지계표가 있는가?

*용두산은 태백산맥의 끝다한 산으로소나무가 우거진 고개라 하여 송현산,또는 초량소산이라 한다용두산이란 용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머리 짬이라 해서 용두산이라 했다.그 용의 꼬리 짬이 되는 용두산은 지금 시청자리에 있고 그 용미산은 바다를 향한 언덕같은 작은 산으로 경관이 좋아 동산이라고도 했다.용이 동해에서 태백산맥이 끝다한 뭍으로 올라오니 장서롭지 않을 수 없고 내륙에서 보면 명산의 명당자리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명당은 동은 청용(), 서는 백호(),북은 현무(거북), 남은 주작(봉황새)으로 그 모두는 주위를 지키는 상서로운 짐승이다

그런데 용두산을 방윌\에 따라 보는 모양이 그에 맞아들고 있다 용두산이 이어내린 방향에서 왼쪽으로는 좌청룡으로 이름 그대로의 용인 청담 청호의 용호반도가 동쪽을 둘러싸서 지키고, 서쪽으로는 천마산과장군산의 장군반도가 범의 위세로 웅크리고 북으로는 귀봉산이 거북의 형상으로 엎드렸는데 남으로는 남주작인 영도의 봉래산이 봉황새 형상이다.

용두산은 한일합방이후 일본인들의 조상신까지 모시고 와서 신사란 사당을 세우기도 했으나 부산의 동산이며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남부민동 뒷산의 천마산이란 이름은 풍수지리설에 합당한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산 이름 중에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이름이 나라에서 말을 기르는 국마장이었던 이곳에 하늘에서 용마가 내려왔다는 전설적인 이름이 붙었다

*당감동의 당은 당집이 있는 당이리가 합쳐진 마을이요 지난날의 감동부락이었고 지금은 감전동이 된 그 감도 신을 뜻한 감이며 감내리가 감천동이 된 그 감도 신을 뜻한다.

*연산3-금련산 자락인 이곳에는 13백여년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고찰 마하사가 마을 굽어보며 변함없이 법고를 울리며 속세의 번뇌를 씻어주고 있다. 이곳 마하사에는 나한이 팥죽먹은 전설과 참새가 이곳에 오지않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사직동-사는 토지신이고 직은 곡물신으로써 임금을 비롯 지방 수령이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쩨사를 드려 나라와 지방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곳이 바로 사직단이다.

 

15. 이도시에서 가장높은 지리적 지점은 어디인가?

거기에는 무엇이 있는가?

또는 축조 되었는가? (권위자들의 진술을 들어라)

*금정산(796)- 북으로는 행정구역상 양산군 동면에 이어지고 동으로는 부산의 금정구, 남으로는 동래구, 서로는 북구의 지반이 되는 부산의 본산이라 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금정산은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데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척가량 이다. 그 위에 샘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가량으로 물이 늘 차 있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색이 황금과 같다. 세상의 전하기로 한 금어가 5색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음으로 산 이름을 금정산이라 하고 그 산에 절을 지어 이름을 범어사라 하였다.

산정에 50척 되는 암석이 있고 그 암석 위에 우물이 있어 물빛이 황금빛으로 항상 넘쳐 마를 때가 없으며 금빛 고기가 그 속에서 놀고 5색 향운이 그 위를 덮고 있는데 그는 범천(불교에서 말하는 18천의 하나)에서 내린 고기다. 법사를 맞이하여 그 금정가에서 화엄신중편을 정송하면 왜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는 것이다.그러한 신인과의 정기로 세워진 것이 범어사이다.

**사찰:범어사- 3번 참조

*백양산(642)- 백양산은 백양목인 사시나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밝음의 뜻인 백양사에서 유래햇다 백양산의 양은 이즈음 지도에서 보이는 볕양의 백양산이 아니라 그 유래를 따른 버들양의 백양산이어야 옳을 것이다. 이 백양산은 금정산에서 이어진 산줄기로 백양산 정상이 부산진구와 북구의 경계가 되어 남쪽 기슭은 동평동이 터잡고 서쪽기슭은 수라동 검포동이 터 잡았다.

**사찰:

-삼광사-지도(표시 안되어 있음)와 자료로는 구할 수 없으나 불교인들에게 실제 영향을 주는 절이 라 할수 있다

-선암사-한때 견강사라고 불렸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이다.675 년 원효가 창건하였다.

*고원견산(504)- 높아서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는 산이 되어서 고원견산이 되었다고 한다. 실제 이 고원견산 산정에서 바라보면 주위가 트여서 멀리 까지 보인다. 지금은 주택지 형성으로 산의 변모를 잃어가면서 수정산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

*승학산(496)- 승학산은 구덕산과시약산의 서쪽이고 엄광산의 남쪽으로 당리동의 뒷산이다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마치 학이 나는 듯하다 하여 승학산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고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렸다고 하여 강선대라 불리는 에덴공원이 있다.

*장산(638)- 장산은 해운대의 주산으로 반여동 재송동의 배산이 된다 상산이란 가장 높다는 뜻이고 장산이란 동래지방이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 이곳 장산 주위에 장산국이 있어서 산 이름이 장산이 되었다고 한다.

*기타- 금용산(152),선암산,화지산(142),수정산(308),구봉산(408),보수산(165),복병산,용두산(60),구덕산,엄광산(380),시약산(500),아미산(140),천마산(324),장군산(152),간비오산,배산(255),금련산(415),황령산(427),구월산(317),안령 등이 있다.산들은 과거를 가졌고 그 과거를 현재에서 보며 도시속에 있는 거친 야산 그대로다

**부산 전 영역에 산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절들이 산재해 있어 그곳을 중심으로 불교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범어사를 시작으로 금수암,대각사,만덕사,선암사,원효암,장안사,척판암,흥국사가 있다.

 

16. 당신의 도시의 어떤지역이 자기들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가?

이도시에서 특유의 영적 환경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지를 구분해보아라.

*부산인의 시민성

-사람들이 거칠고 저항적이다.

-옛 부산사람은 자기 고향을 자랑스레 여기는 자긍심보다 고향을 낮추어 생각하는 비하감을 가졌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조선조 때의 부산사람에게는 관주도의 영향아래 이 고장에 대한 주인의식이나 주권의식을 가질 기회마저 주지 않았다. 방관자들을 만들어 애향심마저 희박케 했다.

-부산사람은 외인과는 타협하지 않는 아집이 컸다. 그것은 오랜날을 보고 겪은 그들에 대한 혐오감에서 온 것이다.

-일제시대 빼앗긴 내고장의 주권과 그들 일본인이 이 고장 사람에 대한 차별대우가 부산사람에게 저항의식을 더하게 했다.

-저항의대상 일본인이 떠나버린 뒤의 부산사람은 너그러운 포용력으로 귀환동포를 맞고 감싸는 동포애를 발휘했다.그것은 그 동안의 시련에서 얻어진 정감에의 값진 산물이었다.

-그런 귀환동포와 피난동포는 정착성을 잃고,항상 고향을 그리는 객지의 나그네가 되어 이곳에 대한 애착이나 일체감이 희박했다.

-오늘날 부산 사람은 오늘의 삶을 위해 현실에 굳게 발을 딛고 관념보다는 실제를,정서보다는 생활을,정치나 문화보다는 경제와 오락을,감상보다는 타산을,명분보다는 실익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다.고 한 말이 맞아 들것 같다.

-이기로 정서보다는 생활을 앞세워 공동체의식이 희박한 가운데 자기중심적이다. 지난날 암울의 한때를 지녓던 물신이면 그만이라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다.

-부산사람의 기질은 화통하고 박력있고 솔직하다고 하면서 거친 말씨로 시끄럽고 서질이 급하다.고 호 있다.

-무뚝뚝한 가운데 저항적이란 사실이다.

*부산지역의 영적흐름

교회활동 미진하고 의식 약하며 침체상태이면서 모이지 않는다.서울보다 영적흐름이 10년 뒤진다는 말도 있으나 교회와 교간의 단합정도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3.영적인 조사 (Spritual Research)

A. 비기독교적인 조사

 

A-1 이도시의 과거나 현재와 관련된 주요 신들이나 지역 귀신들의 이름은 무엇인가?

조상신,

칠성신 -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고 인간의 일 전반에 걸쳐 만능의 영력을 미치는 신.

마을의 수호신.

영동 할머니와 며느리.

용왕.

산신.

성황신.

성주신

 

A-2 주술, 마술, 예언, 사단주의 프리메이슨, 몰몬주의 ,동방종교,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것과 관련있는 사당, 제단, 신당, 기념물 또는 건물은 어디있는가?

 

사당과 제단 그리고 신당.

1. 동래부의 사직단 (社稷壇)

사직단은 원래 임금이 백성을 위해 토신( 土神 : ) 과 곡신 ( 穀神 : )을 제사하는 제단이었다.

원래 이것은 동래읍 근처에 있다가 1709년에 지금의 사직동으로 옮겨져 부사가 부 ()의 토신과 곡신에게 풍년과 안녕을 비는 제사를 말한다.

이것은 한일합방 초인 1910년대 관리 소홀로 허물어졌지만 농민들끼리 제사를 올리던 풍속은 그대로 남아 사직 1동의 主山堂과 사직 3동의 山神堂이 민간 제례의식으로 남아 지금은 매년 음력 대보름에 마을 유지들이 모여 제상을 차리고 마을의 안녕과 화평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2. 감만동의 무민사 (武愍祠)

감만동 지방민의 정성으로 건립된 최영장군의 사당인 무민사가 있다.최영 장군의 시호가 무민이기 때문에 무민사라고 한다.

정확하게 언제 건립됐는지는 알수가 없고 일제 후기때 무민사 사당이 헐리고 동향국민학교로 옮겨지면서 일본의 봉안전이라 하는 일본의 조상신을 모신 신전과 함께 모셔지게 됐고 광복후 그 해 9월에 동민의 힘으로 무민사가 옛자리로 다시 옮겨지면서 1968년에 지금의 여섯모꼴 사당으로 재건되었고 1977년에는 무민사비라는 최영 장군의 공덕을 밝힌 비가 세워졌다.

제사는 매년 420일 낮에 동민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3. 수영의 무민사 (武愍祠)

지금의 남구 수영동에 남아 있는 좌수영성 성지 (부산시 기념물 제 8) 의 동쪽에 있는 선사바위 앞에 무민사 사당이 있다. 박중질은 무장으로써 최영장군이 이성계로 인해서 참형을 당하게 되자 염부들을 이끌고 의거를 일으켰지만 의거가 실패로 돌아갔고 그후 삼족이 멸하는 일을 당하게 됐다. 최영 장군은 사후 대사령이 내려졌지만 박중질은 대사령을 받지 못했다.

그때부터 박장군의 우국충절의 절의를 기리는 의미에서 지금의 사당터의 선사바위에 박장군의 넋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바위에다 넋을 위로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그후 1652년 수영성을 쌓게 될때 주민들이 바위 아래에 사당을 지어 박중질은 사면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민사라 이름 했다고 한다.

4. 자성대의 최영장군의 사당

자성대 북쪽의 동편 기슭에 최영 장군의 비각이 있다.

비각안에는 " 武愍公 崔塋將軍碑"라 적혀 있고 그 앞에는 영정이 있다.

당제는 최영 장군 추모회에서 음력 55일인 단오날에 거행한다.

이것은 순수한 민간인의 사당이라고 말한다.

왜구와 임진왜란과 같은 외치미이 두번 다시 없기를 바라는 뜻으로 세워졌고 또 그러한 기원이 행해지는 사당임은 여느 무민사와 같다.

 

5. 당감동의 영숙사.

이 영숙사에는 가상(假想)의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어모란 외부로부터 당하는 모욕을 막아내는 일을 말하며 조선조 때의 직제로는 정 3품의 당하관 장수에 어모장군이 있었다.

이 사당은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곳에서 왜구를 격퇴하여 용맹을 떨친 어모장군의 공덕을 지내는 것으로써 고을의 평안과 번영을 비는 제사를 동민들이 지내고 있다.

이것은 1808년 인조대 세워졌고 매년 섣달 그믐날 밤 11시에서 새벽 1시까지 지내면서 제주 1인과 마을 유지 4명이 동석한 가운데서 지낸다.

제주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동네 유지들이 모여 정결한 사람을결정을 한다.

제를 지내기 3일 전에 청소를 하는데 이때 무당들이 몰려와 신받이( ) 에 정신이 없다.

관리는 경로당에서 하고 있다.

 

6. 당리의 제석단.

사하구 당리동 북쪽에 있는 승학산 아래에 제석곡이 있다.

이곳에는 마을의 신주를 모신 제석곡 신당이 있고 여기서 흐르는 내를 제석천이라고 한다.

제석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범왕과 더불어 불법을 지키는 신인 제석천(帝釋天)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十二天의 하나로 동족의 수호신을 말하기도 한다.

당제은 매년 33일에 행해지고 있다.

 

7. 구포의 별신굿.

구포의 대리부락에 할배 당산과 할매 당산이 있는데 할배당산은 동민 공동의 소유로써 백년전에 세워졌으며, 음력 정월 열나흘에 동제(洞祭)를 지냈다.

할매당산은 소당골에 있으면서 나무장승과 돌장승이 있다. 이 장승은 잡귀와 잡신의 침입을 막아 마을을 지키는 신주로 삼고 있었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취었다. 이 장승 앞에서 2년에서 3년마다 정월 중에 무녀(巫女) 에 의해 동네굿 (속칭 別神굿) 이 벌어졌다.이 동네굿은 동네를 지켜주는 山神을 위하고 솟대와 장승을 위하는 굿이었다.

이 동네굿을 별신굿이라 하고 은 마을을 뜻하여 마을의 수호신에 비는 굿이라는 뜻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활안정과 제화방지를 비는 제다.

 

8. 청사포의 풍어제.

해운대 중 2동의 청사포의 풍어제는 약 4백년 전부터 내려왔다.

시초는 청사포부락의 한 어부의 아내인 임씨가 고기잡이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가 돌아오기를 빌며 기다리다가 지쳐서 숨졌고, 마을 사람들이 숨진 자리에서 제사를 드렸더니 소나무가 돋아났다고 한다. 이 소나무가 망부송이라고 한다.

임씨 부인을 위해 지내던 마을 사람들의 제사가 뒷날 청사포의 풍어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제는 4년에 한번씩 음력 10월에 행해지면서 닷새동안 계속된다.

이 때 마을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공동체 의식을 다지며 자신들의 소원을 빈다.

근대화 물결이 일면서 부락제 풍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9. 장림동의 당산제.

사하구 장림동 3백년 전에 1686년 장림포 최초로 정착한 마을의 수호신 격인 평강(平康) ()씨 부인을 모신 사당이다. 이 사당은 동제로 지냈다.

장림 1동의 산 167번지에 당산이 있고 546평에 산신당과 사당이 들어서 있다.

당제는 마을 노인이 제관을 보면서 음력 1117일 자정에 지낸다.

돼지머리와 마른 명태, 시루 떡, , 곶감, 수박, 대추, 유과등 각종 음식이 제단 위에 차려짐.

마을 남자들의 재배가 끝나면 마을 아낙네들이 절을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다.

 

10. 부락제.

지금의 해운대구 운촌과 승당에서는 음력 정월 14,106일에 두 차례에 걸쳐서 류씨 할매로 불리는 당산의 신령과 부락 수호신인 지하대장군에게 제향을 올리는 부락제가 있었다.

3년에 한번씩 풍어와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별신굿이 닷새 동안 밤낮을 이어 행해진다.

남구 민락동의 동제에는 음력 정월 보름과 10월 보름에 널구지 할매당에서 당제가 지내졌다.

금정구 금성동인 산성 마을의 공해부락에서는 음력 정월에 부락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부락제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과는 달리 탑제 - 돌을 삼각형으로 쌓아올린 돌무더기 - 로 부녀자들이 제각기 제상을 차려와서 제물을 바치고 빌었다.

북구 화평동에는 부락마다 당산과 당집을 가졌다. 용당 부락에서는 용당 할매당산과 용당할배당산이 있어 부락 공동으로 제사를 지냄. 할배 당산은 수령 백년이라 해서 포구나무 세그루가 있고 4백년 전에 자리잡고 있는 당집이 있다.

화명동 수정 부락에서는 고당 할매 당산과 신목으로 말하는 거릿대 당산이 있다.

이 고당 할매 당산은 4백년전에 건립되었고, 대천 부락에도 고당 할매 당산과 거릿대 당산이 있다.

이 당집도 세워진지가 4백년이 넘는다.

금정구 선동은 조선조 때는 역촌이 있었고 이곳은 마당제(馬堂祭)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말머리 대신에 명태머리가 놓여 졌다.

다대동에는 부산에 보기드문 서낭당이 있다.

홍치부락에는 상조대신 (上祖大神), 당상조모(堂上祖母)를 모셔놓고 1월 초순에 당제를 지냈다.

 

칠성제

정월 7일에 칠성신제가 행해진다. 때로는 정월 초순 중의 어느 날이나 택일하여 하기도 한다.

칠성신에는 북두칠성신이 있어 널리 신앙되어 있고 각처의 사찰에도 산신각과 나란히 칠성당을 사사 하고 있다.

이 신은 사람의 수명을 관장하고 인간의 일 전반에 걸쳐 만능의 영력을 미치므로 이 신에게 지성을 드리면 소원성취를 한다고 하며 이성계가 조선조 태조가 된 것도 지성으로 이 신에게 제사지냈던 것이라는 말도 전해온다. 또 이 신에게 빌 것 같으면 과거에 장원급제한다고 일컬어져 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남자들이 제사를 지냈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지내는 것이 보통이고 가정과 칠성당, 산천, 냇가의 정결한 곳에서 제장을 설치 흰밥과 맑은 물로 지낸다. 시간은 한 밤중.

 

안택제.

보름 전날부터 각 가정에서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무당과 소경을 불러놓고 안택경을 읽으며 가신제를 지낸다.

이것은 1년 동안 재앙을 물리치고 복받기를 비는 것이다.

 

 

 

동신제.

각 부락에서 1년에 한번씩 동신제를 드린다

정월 대보름, 14일 밤 자정이 지나면 각 부락에서 동신제를 드린다.

동신제는 부락제, 당제, 당산제라고도 불린다. 마을 입구와 뒷산에 있는 제단이나 사당에서 제를 드린다.

큰 돌을 쌓아올린 것으로서 이 제단이 있는 곳엔 부락을 지키는 수호신인 수목 (고목으로 느티나무, 소나무)이 있다.

이 동신제는 동민들의 연중 무병과 평온 무사 및 풍년 기원에 있다.

구포의 대리 당산제, 망미동 당산제, 금곡동 동원부락 당산제등이 유명하다.

 

수신제.

정월 15일에 냇가 또는 제방 부근에 사는 부락민 가운데 제방 또는 수액에서 보호받기 위하여 그 수신에 대해 천제 또는 보제를 거행한다.

 

풍신제.

해안 지방의 한 풍속으로 속칭<영동 할만네>, <2월 할만네>라고 하며 음력 2월 초하룻날부터 스무날까지의 사이에 행해진다.

여자가 장독대, 부엌, 뒷뜰 등지에서 행하며 이때 비는 말은 생각나는데로 하며 집안의 태평과 산업의 풍성함들을 구한다.

영동 할머니와 딸이나 며느리중 한명을 데리고 오는데 딸이 올때는 아무 탈이 없는데 며느리와 올때는 폭풍을 일으킨다는 말이 있다. 이것이 영동 바람이다.

영동 할머니와 그 며느리에게 보통은 자신들의 소원을 빈다.

 

춘기문묘석전.

2월의 첫 정일에 문묘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것을 춘기문묘석전이라 한다.

문묘란 공자및 기타 유현의 위패를 안치한 곳으로서 문묘석전은 춘추(2, 8)로 두번 행한다.

 

농신제.

논에 가서 음식을 차려 놓고 빈다.

용신제, 논굿, 논고사, 유두 손 비빈다 라고도 한다.

 

외제.

유월 참외꽃이 떨어지고 참외가 열릴 무렵에 국수를 삶아 참외 밭에 가서 참외 덩굴에 국수가락을 걸치면서 <외가 주렁주렁 내리소> 라고 빈다.

이것을 외제라 한다.

 

망제.

집을 나가서 언제 죽었는지 몰라 제삿날을 모르는 분의 망제를 그분의 생일이나 77일에 지낸다.

 

망혼날.

15일을 망혼일이라 하여 여염집 부녀자들이 나물, 과일, , 밥들을 갗추어서 망친(亡親)의 혼을 제사 한다.

 

여제단.

연고자가 없거나 마을에 들어와서 떠돌아 다니다가 죽거나 전염병으로 함께 많이 죽으 사람의 영혼을 모셔놓은 여제단의 귀신을 7월 백중에 내놓아 얻어먹게 하다가 99일 다시 가두어 두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이날 제사를 지내준다,

이들의 합동묘지를 개장터라 하여 도깨비가 잘 나타나는 곳으로 두려워 한다.

 

9월제.

마을마다 부녀자들이 제수거리를 모아서 99일에 서낭당에 가서 마을의 평안을 비는 제사이다.

 

시제.

10월 중순께 좋은 날을 받아서 햇곡식으로 덕을 하고 술을 빚고 과일과 여러가지 음식을 갖추어 성주신에게 일가의 평안무사를 비니 이것을 성주받이굿, 또는 성주제라 한다.

 

서낭당 세우기.

동회마당에 서낭당을 세우고 이장이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지낸다.

 

산신제.

섣달 그믐날 저녁에 주부가 다른 음식과 함께 떡국을 끓여 산신각에 가서 차리고 가족의 본관, 성명, 생년월일, 시를 쓴 창호지를 앞에 놓고 산신님께 명복을 빈다.

저승에서 차사가 이승사람을 잡으러 올 때 그 고을 산신에게 허락을 받지 못하면 잡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산신께 잘 빌면 세 번 죽음을 면한다고 하는 영험한 것으로 믿고 있다.

 

천도교.

포덕 67(1926) 인암 박찬표에 의해서 부산 교구가 창설되었다.

이는 장기영, 장기동 형제와 더불어 포덕 운동을 전개 천도교 부산시 전교실을 설치하고 중앙 총본부의 인준을 받아 초대 전교사로 임명, 취임 했다.

 

원불교.

이타원, 장적조, 김기천의 헌신봉공으로 개척됨.

소태산 대종사는 원기 9(1924)에 익산 총부를 건설하고, 원기 14(1929) 봄 부산에 내려온 이타원은 아들의 집에 머물면서 포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원기 16(1931) 8월경에 40명이 입교를 했고, 이 무렵 불법 연구회 회장이 부산을 방문 10여 일간 낙동강 하류 하단 박허주의 집에 머물면서 신도수가 80명으로 늘어남. 여기서 하단 교당이 창설됐다.

하단교당은 변두리 지역에 있어서 부산 시내 거주하는 교도들로부터 시내에 교당을 세울 것을 의논하고 원기 19(1934) 5월 시내 남부민동에서 법회를 보기 시작함. 9월에 교당을 신축하고 남부민교당이 정식으로 창설.

 

대한 천리교.

-19031019일 일본인 사또미 다로오가 부산에서 최초로 포교를 시작함.

-190411월 경성 선교소 설치, 본격적 포교 개시.

-19485월 세계 2차 대전 종전 이후 천경수양원 구성 (미군정청 공보처 (325)인가)

-195410월 대한 천리교 본원으로 개칭.

-19615월 대한 천리교 총본부가 문공부(183)등록.

-19732월 기구 개편에 따라 부산 교구 발족.초대 교구장에 정복근씨 선임.

(교구 청사 : 동래구 수안동 소재 동래 교회를 임시사용.)

-197552대 교구장에 이병석씨 선임.

(교구 사무실은 영도구 동삼동 소재 원남선교회로 이전)

-1980123대 교구장 배차효씨 선임.

-19834월 교구 신청사 마련 이전 (부산진구 양정3402-13번지 현재 장소임. 대지 155)

-19864대 교구장에 이병오씨 선임.

 

 

통일교.

-19511127일 부산에 도착한 문선명씨가 엄덕문씨 집에 머물면서 범내골을 중심으로 범내골

토담 집에서 포교를 시작.

-1958년 초대 경상 지구장에 이요한 목사가 부임(기성 교회에서 시무하다가 통일교로 입교)

-19621월 경남, 북으로 지구가 분리되면서 경북 지구장으로 이요한 목사 전근을 감.

-196212대 경남 지구장으로 정수원씨가 임명을 받고 부임.

-196233대 지구장으로 황환채씨가 부임.

-1965114대 지구장으로 유종영씨가 부임. 이 시기에 동구 초량 1동 구교구본부 건물을 매

입하여 교구를 옮김.

-196965대 지구장으로 홍성표씨가 취임.

-197066대 지구장으로 박판남씨가 취임. 문선명씨가 손수 세웠던 옛 토담집 자리 위에 범

일전을 건립 완공 시킴.

-19791077대 교구장으로 홍광철씨가 부임.

-19803월 경남과 부산 교구가 분립. 8대 교구장으로 문평래씨가 부임.

-198429대 교구장으로 이명정씨가 부임. 양산군 철마면에 성산 기도원을 세움.

-198851210대 교구장으로 문평래시가 다시 부임.

현 교구 건물인 범천 빌딩을 구입.( 구입후 통일 회관으로 개칭)

-198931211대 부산 교구장으로 김성일씨가 부임.

-19899112대 교구장으로 엄일섭씨가 부임. 동년 924일 통일회관 7층으로 성전을 옮

.부산교구 현황은 교구 본부 1개소, 교역 본부 10개소, 교회 3개소 도합 14개의 교구, 교역,

회로 되어 있다.

교회의 명칭 - 부산교구, 부산진 교역, 동래 교역, 북부산 교역, 남부산 교역, 서부산 교역, 해운대

교역, 영도교역, 중구 교역, 사하 교역, 금정 교역, 범내골 교회, 부암 교회, 강서 교회 등이다.

신도의 현황은 정회원 - 3,300명 정도이며, 준회원은 8,000명 정도가 있다.

 

태극도.

태극도의 창교자는 조철제씨 (1895 ~ 1985)이며, 증산교 계통이다.

현재 부산시 사하구 감천3105번지에 본부가 소재하고 있다.

-1948년 부산시 보수동에 분부를 둠.

-1955년 감천동으로 이전. 1958년 교조의 사망으로 도전(都典)으로 있던 박한경이 무학도통(無學道通)을 주장 이에 반발하는 박종화, 이윤성, 김용화 등이 당시 경영하고 있던 기업체 (부산 협동상회 미곡상)의 많은 재산을 갖고 탈퇴. 그후 10년 동안 교단을 이끌다가 내우외환등의 어려움으로 1968년 교단을 탈퇴하고 서울로 올라가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를 발족하였다. 이 때 주민 300세대와 각 지역의 신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박한경을 따라 갔다.

-1968년 조철제의 친아들 조영래가 교단을 이끌었다.

-1981년 이갑성씨가 도전(都典)으로 있게 됨.

 

 

 

부산의 신흥종교.

-대한 불교 봉래 미륵 대법사 (영도구 신선 2).

-산성 기도원 (금정구 금성동 산성 마을).

- 세계 메시아교 한국 본부 (남구 광안동)

-용화 미륵 불교 연구회 (금정구 장전 1)

-대한 정도교 (부산진구 전포 4)

- 하나님의 교회 (해운대구 우 1)

- 부산 타불교 (영도구 남항 1)

- 태화교 (영도구 대교동)

 

A-3 과거에 이도시가 건설되기 전부터 우상숭배가 자행되던 지역은 어디인가?

1) 지역.

부산진구 - 당감동,

사하구 - 감천동, 당리동, 장림동

북구 - 감전동, 구포,

동래구 - 사직동(사직단), 안락동, 온천동

해운대 - 2,

수영구 - 수영,광안리,

충렬사, 금정산, 영도, 송도, 다대포, 태종대 등등.

2) 지리적 위치 : 바닷가, , 마을 입구.

 

A-4 우상숭배와 연관된 기예품이나 유물이 있는 문화센터들은 어디에 있는가?

- 충렬사, 박물관, 사찰, 불교 백화점, 불교 서점, 진시장.

 

A-5 이 도시의 지도자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이방인이나 정상게 바친 적이 있는가?

- 도시의 관원으로 내려왔을 때 도시의 사찰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찰의 주지들에게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이 지금까지 관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 문정수씨, 최형우씨, 서석재씨 등 지도자와 일급 관료들은 의무 사항 처럼 내려오고 있다.

 

A-6 이 지역에 처음 거주하였던 사람들이나 이도시 건설한 사람들이 이 도시를 저주한 적

이 있는가?

- 없다.

 

B. 기독교적인 조사

 

B-1 이 도시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어떻게 대접하여 왔는가?

- 대체적으로 어렵게 대했다.

 

B-2 복음전파가 쉬웠는가? 어려웠는가?

- 어렵다.

 

B-3 교회들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가? 올바른 교회라고 느끼는 자는?

- 해운대, 초량, 수영구, 동래구, 금정구 등

 

B-4 이 도시의 교회들의 건강상태는 어떠한가?

- 침체기에 있다.

 

B-5 “이 도시의 장로로 인정받는 기독교 어른은 누구인가?

- 수영로교회 이규현 목사님

- 호산나교회 최홍준 목사님

-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님

 

B-6 이 도시 전역에서 기도하는 일이 쉬운 일인가?

- 대체적으로 쉬운편이다.

 

B-7 교파간에 기독교 지도자의 단합정도는 어떠한가?

- 높은편이다.

 

B-8 기독교 도덕에 대한 이 도시 지도자들의 견해는 어떠한가?

- 보수적인 신앙으로 도시에서 영향력을 못미치고 있으나 성시화운동이 활발하다

 

 

C. 계시적인 조사

 

C-1 이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아는 성숙한 중보자를 인정받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 생명수교회, 세계로교회, 큰숲교회, 연제로교회, 

 

C-2 이 도시 전체를 또는 이 도시의 삶이나 지역의 어떤 분야들을 지배하고 있는 듯이 보

이는 주요 정사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 범일동 : 무속인들이 모여 산다.

- 보수동 : 피난민들이 모여서 교회를 세우고 살아감.

- 완월동 : 사창가와 점치는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슴.

- 초량동 : 외국인 상가.

 

부산 중보기도 내용

21:6-8(생명수의 강, 죽어가는 부분이 일어나도록, 교회의 소성)

부흥(은혜의 물줄기,빛의 근원지)

*기도 내용

교회 : 교회 지도자 들의 무릎과 발목이 강건해 지기를

주의 부흥을 나누고 신원의 날을 선포

생명이 밫으로 흘러가 기도운동이 일어나도록

은혜가 흘러가지 못하도록 막고있는 부분

부산 몸의 피의 흐름이 원활하도록(혈관 뚫리고 고른 피의흐름과 영적 힘의 고른 분배)

돈과 부의 축적(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고른 분배, 공의 와 정직 선포)

경제:금과 은이 하나님의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재정이 풀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재정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 회개

재정으로 안정감 삼았던 것(필요에 의해 나누는 삶에 헌신)

많은 기업,경제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부산으로 돌아올 것

수출입과 컴미션,세관청,항만청의 안전한 회복

건전한 기업체가 일어나도록(부산에 부요를 끼칠 수 있는 기업 확장)

실직자 흡수와 벤쳐 기업 축복(믿는 자들이 하나님 경외함으로)

나누이고 베풀기를 힘쓰는 기독교 세계관이 재정에 일어나도록

교회안에 거룩한 나누는 영적 제사 일어나길

믿는 자들안에 먼저 공의,정직,경외의 삶 회복과 나누는 일

*마음나누기:부산경제회복을 통해 한국경제가 일아나고 열방 섬길 것이다

36:28-31

 

*음성듣기:47:1-6

23편부산의 목자되신 예수님,은혜의 단비로

*기도내용

생명의 근원지가 되며 교회를 세운 처음 뜻이 이루어져 부흥이 이 교회를 통해 일어나도록

사람을 낚는 교회,전도하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

영적지도자들이 깨어나고 부흥의 도전을 받아들이며 전통,관습을 벗어버리기를보혈의 능력 을 선포하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며 합심햐여 기도하는 중보기도 팀 일어나길

복음안에 빚진자가되어 선교에 비젼을 품고 세계를 향해 일어나도록

강단에 보혈의 능력을 선포하고 영적인 축복을 지역과 부산과 전 세계에 흘려보내도록

장로님들안에 있는 율법과 굳어진 마을이 깨어지고 청년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수 있기를

비젼 트립을 통해 성령의 새로운 바람과 꿈과 환상을 보는 백성

교회문이 낮아지고 열린마음과 나눌수 있는 분위기

김해장신대(통합측), 고신대가 비젼을 가지고 21C의 방향성을 세워나가는 것

차세대의 지도자를 일으키며 성령충만한 학교가 되기를

일신기독병원과 어린이 집과 신학교가 사회의 영향력을 주며 지경을 넓혀 가도록

정부가 부산의 많은 사람을 섬길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교역자들의 일치된 마음이 부산의 영적 흐름을 세워나갈 수 있길

28:18-20 지상명령을 성취하며 가까이 죽어가는 영혼 돌아보기를

 

*음성듣기:26:16-19

8:28

23:1

14:25-33

 

*음성듣기: 1:15 도시 한복판에 빛이 비취는대 사람들이 숨는 것

5:8-18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11:43 죽은 나사로가 나아오며 풀어 놓아 다니게 하는 것

12:1-2 예배자로 서는 것과 이세대를 변화시키는 것

*기도내용: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떠도는 것 대적

하나님의 영광 가로채고 거짓의 영에게 눈돌리게 하는 것 대적

주님의 거룩한 보혈이 모든 영역과 사람들에게 뿌림

고전15:55-56 사망을 꾸짖어 저주함

14:6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동래,부산역..)

창기와 세리를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의 필요를 채워주길

예배팀이 부산 땅 곳곳에서 일어나길

4:17-24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그들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진리, 생명선포

고후5:17 거룩하고 순결한 여인인 것 선포

제물과 결탁해 영혼육을 파괴한 것 음란한영 대적

십자가의 행진과 보혈로 생명의 빛 선포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전도사역 감당

사마리아여인같이 삶에 대해 갈등하며 해결자되신 주님을 영접

이들위한 창의적 접근과 전략세워지길

찰스 피니와 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일어나 윤락가가 회개하고 무릎끓고 나아오길

진정한 부흥이 개인과 나라,열방에 일어닐 때 사용되는 땅

젊은이:요엘2:28-32

110:3

12:1

모든 젊은이들의 선교단체와 교회학교의 프로그램이 발전

부산의 거룩한 세대를 일으켜주시도록

부흥이 교회와 지역에 일어나기를

무릎끓는 교회 지도자와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며 부산항을 통해 젊은이들이 전세계로

분열의 발생지였지만 화합과 연합으로 부흥의 근원지

기도의 불길이 부산 전교회를 통해 전지역이 흘러가길

사역자들안에 기대감과 소망하는 마음주셔서 비젼을 가지고 섬기도록

40:29-31

 

*음성듣기:5:14

60:1-2

16구별 손얹고 기도하며 말씀받기

이땅의 필요는 예수그리스도(성전미문의 앉은뱅이)

목회자,기독교인이 이필요를 보고 채워주도록

하늘향한 부산인의 손(주리고 가난하고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

탯줄을 끊지 못한 어린아이(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까지 자라가 단단한 음식먹음

*동래구:1

54:1-8

79

62:1-5,10-12

3:13-20

전쟁의 구름(답답하고 하나님이 어디있느냐는 외침)

*기도내용

동래의 음란의 영,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룩함이 흘러 들어오는 문

기독교방송 축복:하나님안의 예배와 찬양(세상과 타협한 것 용서구하고 처음 목적회복)

부산 땅이 거룩한 예배처소가되어 신발을 벗고 엎드림

모든 교회들은 종을 울릴찌어다

듣는 모든 사람은 깨어날찌어다

6 이땅이 거룩한 씨로 되었다는 것

동래가 부산 부흥의 열쇠가 되는 것

주의 부흥을 예비하는 땅으로 영적의미의 새로운 부산땅의 중심지가 되는 것

6:9-10

사방에 계신 하나님,구와구를 연결하는 테두리의 사슬 끊어버림

*사직동:거짓,속이는 영 팽배

어린이를 묶어 다음 세대를 붙잡고 있는 악한 영은 떠나갈찌어다

*부산진구-동래의 영향력이 이곳까지 거짓되게 영향을 줌

당감동18번지:화장터로 죽음의 영과 저주의 말(땅값 낮고 수준 낮다)

*기장군,강서구-부산의 위성도시로 외로움의 영 가득, 관심밖의 땅(편입된지 얼마안되어 불 공평한 마음있으나 비젼 가능성이 높다)

*남구,수영구-광안리 해수욕장(모래사장에서의 예배),카페와술집.젊은이들의 필요

*영도구-사마리아 땅과 같다.여인들과 소외된 어린아이를 위해 (외로움,수치,부끄러움)

돈과음란이 우상이 되어있으며 깨어진가정과방황하는 자녀 이곳에 예배처소를

4:23-24

62:1-5

*해운대구-서울사람이 많이 모이는 출입구

서울것이 그대로 내려옴(이바인,향락)

어두움이 있는데 그들은 느끼지 못함

도로,해변가,골목,극장가를 중심으로 타락의 영

*소망:송정의 교회들이 일어날 것

 

부산땅에 흐르는 두가지 줄기

*범어사-삼광사-대청공원-영도구

*송정-해운대-수영구-남천동-서면-문현동-다대포

2:11-22

21세기의 비전:항구와 항만통한 경제적 부흥

부산의 관문 축복송정의 울산 포항의 항구,노포동,부산구포,낙동강,중앙동

 

*음성듣기:24:5-13땅의 거민이 더럽고 율례를 범한 것

55:1-2 세상것에 달려가는 사람들 음란이 영

23 하나님이 이들의 목자가 되십니다

나그네와 행인같은 인생을 권고하시는 하나님

*전략:현수막을 세우라

*기도내용:,귀가리워져 허망한 거을 쫓아가는 음란의 영 대적

사람의 영혼육방황하도록 속이는 영 대적

거절감과 소망없다고 속이는 영과 교회들이 복음전하기를 포기하는 마음

속사람의 만족감을 음란,정욕,사람으로 채우는 것

축복이 아닌 저주가 드나드는 것 대적

교통사고빈발지역을 보혈로 덮고 버스안에서의 음란비디오,음악,이 거룩케 되길

걸음이 활기차며 소망이 넘치기를 원하고 더 이상 버려진 땅이 아니라 거룩한 땅

생명가진사람통해 이 땅이 주께로 돌아올것이며 교회가 지역을 빛으로 덮음

이지역으로 경남에 빛이 전해지는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을숙도>

*음성듣기:47;창일한 물

수질오염으로 인한 강의 회복,식수로서의 역할회복,강물이 새롭게 되어 정화

4:14-15생명의 근원이 예수그리스도

1:26 자연보호유지,창조하신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

*기도내용:생명의 통로가 막히지않길,물에 대한 불신 회복

이전의 아름다운 도래지로 예술설 회복

주민과 자연을 생각하지 않은 지역개발로 정치에 대한 불신 끊음

휴일,가족 단위로 깊은 사랑 회복과 화합(부모와 자녀 사랑 회복)

강과 바다가 만나듯이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화합

개발 사업 실패했기 때문에 오는 소망없고 기대하지 않는 마음 회개

 

<몰운대>

*기도내용:창조자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알 수 있는 지역(하나님만이 참 신)

돌들로도 찬양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

다대포 지역의 현주인과이주민간의 갈등

이곳에 세워지는 교회가 복음의 열정이 불일 듯 일어나길

교회가 참된일치로나아가길

생활수준이 낮은자들의 분노,소외감,실망이 하늘의 소망두는자로

5장 산상수훈

영적,육적 가난함이 말씀으로 넉넉히 흘러들어가길

부귀와 풍부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몰운대의 가려져있는 어두움이 밝히들어날 뿐아니라 주의 부흥이 일어나것이다

이땅은 결코 소외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번도 눈을 뗀적이 없으신 마음

어머니가 사랑스런 아이를 안고 계신 모습

사랑과 관심으로 지역이 발전하며 영적성장을 이룰 것이다

 

<달맞이길>

*기도내용:이 길에 만연되어 있는 외로움과 허탄.공허.더러운 것 대적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으며 거룩한 대로로 선포와 건물, 오고가는 행인, 드나드는 차 축복

*젊은이:건전한 인생설계와 삶의 목적을 명확히 세우고 세계를 품고 열방으로 흩어지기를 기도

6 주의나라와의를위해 자기를 무섭게 드리는 자들이 된다

삶과 꿈을 포기하게 하며 사람에게 갖는 안정감 회개

술취함과 방탕함,세상허무를 주장하는 악한 영대적

세상을 향해 흘러갔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기를 기도

12:1-2

19:1-9

하나님의 오심을 예비하며 부흥에 날에 사용되며 강한 용사가 일어남

이땅의 레스토랑과 카페에 거룩한 영향력과 건전한 교제의 장이 될 것 선포

건장한 자같으나 힘없고 가난하여 예수가 필요한 자들이다

 

<송정해수욕장>

*음성듣기:왕상18장 불로 임한 하나님의 능력,시원한 성령의 바람

41장 중보기도하는 땅,은혜 물줄기의 시작

가느다란 물줄기가 굵고 힘있는 폭포와 같은 물줄기

*기도내용:중보자의 무릎과 손이 강건해지며 거룩한 성령의 바람이 불 것이다

물줄기가 터지는 것이 주의 젊은이를 통한 날카로운 기도로 이루어 질 것이다

함께 엎드려 중보하는 동역자들이 영광 중에 헌신할 것이다

땅끝에서부터 하나님이 송정땅을 붙잡고 계심(주의 주권 인정)

23:18

강줄기가 막히지 않기위해 가장 겸손한 자로 서는 것이다

 

<수영로 교회>

명목 상의 크리스천 흡수해 제자훈련하는 교회

부흥을 준비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영적 지도자들이 깨어 기도하며 기름 부으심이 넘쳐나가며 은사와 능력,비젼이 서는 교회로 설 것

한계를 뛰어 넘는 교회로 지경을 넓혀 열방으로 나가는 구심점이 되길

목사님이 주님의 보좌와 기름부으심 가운데 깊이 들어가길 기도

수많은 젊은이들을 일으켜 열방으로 파송하는 일 감당

 

<완월동>

*지역설명:점치는 골목(우상숭배)과 정화시범지역,충무교회

미성년자 오후8-새벽5

*음성듣기:호세아6:1, 10:12-13

하나님이 주신 성을 거룩하게 사용하지 않고 돈을 버는 도구로 사용

사람과 함께 종교가 맞물려 있는 부분 대적

이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기도내용:많은 여성들안에 가장 형편과 쾌락위해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회개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한 것 회개하며 고아와 과부의 친구이신 하나님

날마다 돈과 죄에 얽매이고 빚진 삶의 연속을 끊는 기도

이들에게 신원의 날을 선포하며 신란되신 예수로 순결 선포,헵시바와 뿔라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로 충무교회가 빛으로 들어나며 어둠이 숨기지 못하 는 교회

고후 5:17 주님의 거룩한 보혈 받아들이며 구원으로 새것 선포

향유옥합을 깨뜨린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자가 주님을 끝까지 수종 들 것이다

신묘막측한 창조와 계획하심으로 하나님 창조

만몬의 신 팽배와 계속적인 가난으로 이곳에 살아야 된다고 속이는 영 대적

경제권을 쥐고 있는 포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가를 기도

뱀의 형상으로 주리를 틀고 있는 음란의 영을 발로 밟으며 대적

죽음의 영 대적하며 산자의 땅인 것 선포

구원의 손을 내밀지만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죽어가는 이땅에 주의 사람을 일으켜주소서

주의 종들이 사랑으로 들어가도록

어두움의 삶을 거절하고 문둥병이 씻겨지는 역사로 자신의 삶과 재정을 드려 주님 을 섬길 것이다

37 하나님의 생기

52:1-6, 8:1-2,6:23,7:24-25

 

<용두산공원>

*기도전략:고지인 전망대에 올라가 동서남북으로 나뉘어져 중보하며 영적전쟁한다

*남쪽의 부산항:거짓과 불신의 문이 열려지며 구원받는 거룩한 문

부산항을 오고 가는 선박이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증거

부산항 입구에 거룩한 보혈이 세관이 되어 들어오는 것을 선별한다

어부들을 제자 삼으셨던 에수님,그들의 충성스러움과 강직함

선박마다 기도실을 만들어 바다신가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며 안정감을 삼는 법

깊은 곳에 나가 그물을 던질 때 바다의 부요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60:4-5 부산항이 경제 부흥의 열쇠이다

어업과 어시장의 부요가 부산의 고른 분배와 풍요가 다른 나라에 빼앗기지 않기를 위해 기도

사면을 바라보아 보이는 열방을 다 주리라.

 

<부산항>

*음성듣기:21세기의 부흥을 준비하는 땅,부산을 너무 사용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어린이와 청년이 일어남으로 회복과 부흥-110:3

부산항과 공항을 통해 사람들이 열방으로 나가고 들어오는 땅

1:26-28 축복인 동시에 명령이다

9:1-18

33:3교회가 기도하며 관심을 세운다

*비젼: 54:2-3 일어나 장막 터를 넓히며 주를 위해 일어서는 강한 용사

21세기의 부흥을 준비하는 땅

60 열방을 비취는 땅

*전략:110:3

가덕덕공항과 부산항을 통해 경제적 부강과 영적 부흥을 일으킨다

경작하고 기경하는 땅

 

*기도내용:주님의 안전지대에 영영히 거하는 땅

바다의 풍부와 산업으로 인한 감사

분주해 있는 이땅이 하나님을 찾게 해주시기를 기도

1:24-2:5 물댄 동산 같으며 바다와 땅에 구원선포

헛된 우상에게 주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는 땅이 된다

부자영감:부산 땅의 교회안에 세상과 동일한 만몬의 영이 들어와 있는 것 대적

3 두주인을 섬기며 십일조를 내지 않는 가난한 자의 영적 흐름이 팽배한 교회가 변하도록

움켜쥐고 풀지 않으려는 재정원칙이 심은 데로 거두는 영적원칙이 드러나길 기도

많은 지역과 가난한 지역을 겸손함으로 돌아보며 재정을 풀도록.6

교회재정이 풀리는 것이 부산 땅의 재정이 풀리는 것이다

사르밧 과부의 두렙돈을 기뻐받으셨던 하나님

54:1-3

19:17 가난의 근성과 돈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사고를 끊습니다

1:15

간난아이의 움켜진 손이 자라며 성실함으로 수고하는 손이 되는 것

움켜진 손을 펴서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어날 것 선포

인격적으로 손을 펼쳐서 나누어 주는 삶가운데 헌신하기로 결정

재정의 끈중 지역적 감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묶는 저주를 풀어줍니다

10:17-24 주의 보혈로 경배,예배드리는 땅

경제.정치의 문제로 부산의 소망이 없고 참만족이 없으나 소망을 갖는 땅

전영역에 겨자씨만한 믿음이 썩어져 큰 열매를 거두며 기도모임이 일어날 것이다

13:13-18하난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아브라함 같은 자로 여기심

53

 

<구체적 전략>

1 전도집회

*15(돌아온 탕자):돌아온 탕자에게 잔치를 배설하시는 아버지

-회개운동:부산 부흥의 시작이 되며 소모임에서부터 교계의 영적 대각성으로 일어난다

-영적전쟁:부산의 어두움의 뿌리가 되는 만몬의 영을 묶으라,특공대와 같은 중보자 찾음

교회와 선교단체의 연합이 핵심적 열쇠

-중보기도:부산의 동서남북 기도그물망으로 연합기도네트워크를 짜고 그를위한 거점을 확보

:헌신자를 찾고 중보기도모임을 일으키며 부산의 영적.경제적 성장을 일으킨다

:굳어진 마음을 기경하며 열방을 위한 기를 든다

 

2.거리대행진

-예배의 부흥:부산의 가장 큰 필요로, 거리로 나가는 생명력있는 예배가 절실하다

-노방전도:부산의 모든 청년을 중심으로 한주의 한번 사람 밀집 지역에 나간다

-예수대행진:진리를 선포하는 작업으로 교회가 동참하기까지 개척으로 시작한다

-거룩한 걸음 행진:교회(성가대)와 선교단체가 구역을 정해 정기적으로 걷는다

-청소년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개발

 

3.목회자를 위한 모임

-목회자 세미나

-목회자 간담회

-목회자 제자훈련학교

 

4.부산 경제를 위한 구체적 방안

-재정의 반대정신으로 나누는 삶에 헌신한다

몸안에 식상하고 잃어버린 플로잉 정신을 새롭게하며 흘려보내기 시작한다

-직장인 사역과 독수리 예수제자훈련학교 사역을 일으켜 바른 재정관을 훈련한다

-직장인 세미나로 하나님 경외하는 삶과 재정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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