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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클리인사이트 Weekly insight

이승만과 대한민국, 한국교회와 한 민족의 소명

by 바이블도슨트 Bible Docent 2023. 3. 2.

1. 대한민국에서 "보수"란 어떤 의미입니까?


김무성씨는 "북한에 가면 공산당이 보수"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던 걸로..)

유교사상에서는 "조선으로의 회귀"가 곧 보수죠.

어떤 이들은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지키는 것이 보수라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안보적 의미의 보수 혹은 반공보수"가 일반적입니다.
북한을 싫어하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세력이 곧 보수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2. 보수주의는 무엇입니까?

 

여러 키워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유 #신앙 #가정 #생명 #개인의 존중 #건국

#소명의식 #낮은 세금 #제한된 정부 #강력한 국방 등

이런 단어들이 보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보수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1620년 메이플라워호는 "자유"를 위해 서진했습니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시작된 보수주의의 흐름은

미국 독립선언(1776)을 거쳐 미국 헌법(1787)에 남겨집니다.

그리고 이 보수주의의 흐름을 지켜내기 위하여

A. 링컨과 윌리엄 버클리, 러셀 커크, 레이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보내며 간신히 미국의 보수주의를 지켜왔습니다.

 

4.한국의 보수주의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1865년 제너럴 셔먼호의 토마스는 순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18세기 말 조선에도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승훈이 처음으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입국합니다. 

당시 교황은 동아시아의 제사를 우상숭배로 정의했습니다.

1832년 유대인이었던 귀츨라프는 제주도에 난파하여 한글과 주기도문을 전달했습니다.

1865년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한국에 입국, 순교했습니다. 

1877년 존 로스는 토마스의 순교 소식을 듣고 만주에서 조선으로 오려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만주에서 서상륜과 서상조에게 세례를 주게 하셨고, 조선어 번역 성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는 교회가 있기 이전에 "말씀"이 먼저 만들어졌던 나라였습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도 동일 시기에 "이수정"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성경이 함께 번역되고 있었죠.)

그리고 서상조의 집에서부터 조선의 첫 교회인 소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황해도 소래교회

이렇게 시작된 조선의 복음화는 호러스와 알렌(1884)의 제중원 병원 사역과

언더우드 아펜젤러(1885)의 배제학당, 연희전문학교 등의 학교 사역을 통하여

이 땅에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들을 통하여 서재필, 윤치호, 이승만 등 걸출한 복음적 보수주의자들이 생겨나고

신앙의 자유와 미국 헌법을 이해하는 보수적 배경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들은 1896년 협성회의 이름으로 조선 최초의 보수주의 단체를 만듭니다.)

 

이들은 1919년 31 독립 선언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1945년 광복이 일어나기까지

독립운동에도 깊게 관여했습니다. 1948년에 이뤄진 건국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들 보수주의자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서양 보수주의의 시작에 메이플라워호의 역할을 이 나라에서는 외국의 선교사님들이 해 주었고,

인쇄술과 미디어를 통하여 독립과 건국을 이룬 이 나라의 인물들은 "조지 워싱턴"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5.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

 헌법의 가장 중심에는 "국민"과 "선거"가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최초로 근대식 선거가 이루어진 곳은
1887년 새문안교회에서 2명의 장로를 선출하는 곳에서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적 선거가 이뤄진

첫 장소는 바로 "교회"였습니다.

곤당골교회의 모습

 그후 1910년 곤당골 교회에서는 백정 박성춘이 양반을 누르고 장로로 선출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1905년 전북 금산교회에서는 자신의 주인을 누르고 머슴이 장로로 선출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모든 신분을 뛰어넘는 가장 평등하고 정직한 선거가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6. 이승만과 보수주의

이승만은 훗날 말하길, "대한인의 새 물줄기는 '예수교회'에서 나온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기록한 <독립정신>에서 강조하는 6가지 강령은 결국 한 주제로 통일됩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바로 잡히고 교화되는 길은 하나님 앞에 백성 개개인이 바로 서는 수밖에 없다!

나라가 부강하고 잘되는 길은 오직 "코람데오 밖에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1904년 8월 그는 신학월보와 독립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예수교가 가는 곳마다 변혁의 주의가 자라는 법이다."

 

그는 "예수교"에 대하여 더 깊게 경험하기 위하여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당시 미국 학계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칼빈주의 강연(1898)의 열풍으로

칼빈주의가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칼빈 클럽"이 만들어지고

칼빈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왕성할 그 때, 유학이 이뤄졌습니다. 

유학 중의 이승만

"인간 존재에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은 영역은 단 한 뼘도 없다."

 

훗날 이승만은 이러한 칼빈의 정신이 서진하여 이 태평양 기슳으로 왔다고 기록합니다.

이승만이 가지고 있던 보수주의의 가장 중심에는 "칼빈주의"가 있었습니다.

 

이후 그가 일제의 탄압 속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동아시아를 개혁하려 했던 이유는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에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7. 한경직의 보수주의

이승만의 보수주의는 그의 20년 후배 한경직에게 흘러갑니다.

그는 서북청년단 사건으로 반공 투쟁을 적극적으로 했던 목회자였습니다.

(서북청년들의 반공 투쟁은 소련의 탱크를 막아서는 담대한 행동이었습니다.

총 24명이 사망하고 350명이 부상했으며, 1000명이 체포되고 200명이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 위에 자유와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서북청년단의 모습

그는 1946년부터 2년간 줄기차게 건국과 기독교의 주제로 설교를 진행합니다.

그는 강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기독교를 모르면 민주주의는 가짜다."

하나님을 뺀 민주주의, 예수의 은혜를 뺀 민주주의는 가짜이며, 속임수라고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를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복음으로 시작된 보수주의를 지키려 했습니다.

 

8. 제헌국회의 다짐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승만은 사람의 자랑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며

국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의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며, 칼빈주의의 토양 아래에서 대한민국의 법이 정리됩니다.

그리고 그해 8월15일 건국절에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이 나라의 절대적 원리임을 공포했습니다.

제헌국회의 모습 (1948.5.31)

그렇습니다. 이 나라는

"개인의 신앙, 이동, 표현, 소유 등에 대한

근본적인 자유를 위해 존재하는 나라" 입니다. 

 

1953년 8월 10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 국민의 근본 목표는 동포를 다시 되찾는 것"임을 공포합니다. 

헌법에 공포된 국가 존재 원리와 같은 선 위에서의 선언입니다.

"북한 동포들은 대한민국의 동포들이며, 그들의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책무요 목표다!" 하고 말합니다. 

 

 그는 1954년 미국 의회연설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표현한 후,

반쪽짜리 광복, 반쪽짜리 건국 때문에 연약한 동포들이 포로로 잡혀 있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는 죽기 전까지 갈라디아서 5장 1절을 가지고 북한 동포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떤 종류든 노예의 멍에를 져서는 안된다."

이승만의 유언

9. 잃어버린 국부의 뿌리를 찾아라

 지금 대한민국은 정체성과 부르심을 잃었습니다.

국부 이승만의 뿌리를  상실했습니다.

"선경제 후통일"이라는 명목하에 북한동포들의 눈물과 아픔을 잊었습니다.

선경제, 후통일?

이 정책은 "인간의 본성"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선경제 후통일 정책의 문구들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어 합니다.

부유하고 안락한 삶이 주어지면, 간절함은 잊혀집니다.)

 

여기서 바로 "기득권 보수"가 등장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 부유, 풍유를 빼앗기지 않겠다! 지키겠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이렇게 자리잡게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 뒤의 북진 통일!

10. 한국의 보수주의는 어떻게 다시 일어나는가?

 첫째, 이승만의 뿌리로 돌아가야합니다.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 독립적 주체로 서며 개인의 자유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 진보의 역사를 막아서야 합니다. 젠더주류의 물결, 문화혁명, 차별금지법 등 말씀과 신앙을 위협하는 모든 물결들과 용감하게 싸워야 합니다.

 셋째, 북한 동포들을 기억하고 해방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가의 책무요 목표입니다. 이 나라는 국민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데 그 목표를 가집니다. 

 넷째, 자유의 서진운동을 기억하고 그 흐름과 소명을 되찾아야 합니다. 구속사적 흐름이 있습니다. 복음이 흘러가는 곳에 보수주의가 흘러갑니다. 기득권을 가진 보수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유의 가치를 지키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 그 자유의 서진이 지금 북한에서 막혀 중국, 중동, 무슬림에 막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뚫어냅시다. 나아갑시다. 성문으로 나아갑시다! 기치를 들고 자유를 공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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